사랑의 시차
최영미
내가 밤일 때 그는 낮이었다
그가 낮일 때 나는 캄캄한 밤이었다
그것이 우리 죄의 전부였지
나의 아침이 너의 밤을 용서 못하고
너의 밤이 나의 오후를 참지 못하고
피로를 모르는 젊은 태양에 눈멀어
제 몸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맨발로 선창가를 서성이며 백야의 황혼을 잡으려 했다
내 마음 한 켠에 외로이 떠 있던 백조는
여름이 지나도 떠나지 않고
기다리지 않아도 꽃이 피고 꽃이 지고
그리고 가을, 그리고 겨울
곁에 두고도 가고 오지 못했던
너와 나, 면벽(面壁)한 두 세상.
<Sergei Trofanov - La Boheme>
< 4월의 어느 하루, 시와 선율에 젖어 한자 붙임>
벽대신 문을 달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용서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냥!... 너같은 사람도 존재하는구나...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마.
용서에도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지금은 그냥 말없이 지나가련다.
분노끝에 용서하려는 그 마음...
어쩌지 못해 망각하려는 그 마음...
세월속으로 들어가면 다 쓰러지는
한낮 부질없는 감정의 몸부림.
순간들이 엮이어 인생이 되긴 하지만
가치없는 순간엔 매몰되지 않으련다.
나도 한 때는 그 누구에게 벽이었다.
벽을 향해 오랫동안 말을 걸던 사람.
벽 앞에서 무너지며 상처받던 사람.
그 사람들이 떠나고 나서야
벽처럼 당당한 척 하던 나는
밤의 강물에 눈물을 보태야했다.
그날 후, 벽이 있던 곳에 창호문을 달았다.
타인이 내게로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찬바람을 동반한 채 문을 밀치고 들어와도
따뜻한 방석을 건네고 마주 앉아
행여 내가 만들었을지도 모를
어떤 상처와 똑바로 대면코자.
꽃이 피는 것도 미처 보지못한 봄
흩날리는 벚꽃잎들은
비젖은 아스팔트를 수놓고
내 더러운 발은 꽃잎들을 덮치는데
꽃이 피는 두려움에 꽃을 등지곤 했던
내 바보같았던 4월의 추억들!...
오늘도 마음밭을 호미질하며
모난 돌 몇개를 줏어내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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