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녀가 떠났다.
서로 얼굴도 한 번 보지못한 그녀는,
게시판에 '용서 바랍니다'...란 글 하나를 남기고 떠나갔다.
이제 더 이상 게시판에서 그녀를 볼 수 없다...
이후론 사랑스런 그녀의 글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
대중앞에서 우스개 소리로 사랑을 고백한 내 미성숙한 글 한 편이...
우연히 그녀의 남편눈에 띄어 그 남자가 상처를 받은 것 같고,
그래서 그녀의 가정에 어떤 긴장감이 초래된 것 같고,
결과적으로 그녀 또한 넷상에 글쓸 자유를 제한당하는 듯한 느낌끝에,
그녀는 게시판의 글쓰기를 중단하고 가정속으로 숨어버렸다.
나, 한 사람때문에...
그녀를 좋아하던 게시판의 사람들도,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다.
전혀 예상치 못했고, 의도치도 않았던 결과...
세상에는... 내 의지대로 행동했으나,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이런 황당한 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내 잘못이었음을 부인할 순 없다.
말한 사람이 아무리 '아'라고 말했다해도, 듣는사람이 '어'라고 들었다면,
결국은 듣는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감안해서 말하지 못한,
말한 사람의 잘못인거다.
2.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의 행간속에서...
"훗날,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길 빌어!..." 라는,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읽어내었다면... 그건 나만의 착각일까?..
그녀도... 나도...
서로에게 섭섭해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은 없으리라 믿고싶다.
그녀도 가끔씩의 내 사랑 고백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웃으면서
농담으로 듣고 이해하며 넘어가곤 했기에.
지금 다만!...
그녀는 글쓰기 10개월전의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갔겠지만,
난... 가슴이 많이 아프다는 것.
떠난 그녀의 아픔보다 내 아픔이 먼저 느껴지는 것.
이런 난 이기적인가?...
3.
어색하고 긴장된 공기가 흐를 그녀의 가정분위기가 아프고,
그 경직된 공간속에 힘들게 앉아있을 그녀생각에 아프고,
그녀의 노래를 더 이상 열린 게시판에서 들을 수 없음이 아프고,
내가 그녀에게 더 이상 내 노래를 들려줄 수 없음이 아프고,
그녀와 내가, 더 이상 열린 공간에서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없음이 아프고,
채 두달 정도밖에 안되는 만남의 시간에 비해, 너무 빨리 찾아온 이별이 아프고,
앞으로는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막연한 기다림이 아프다.
그녀의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글에,
난 아무 댓글도 쓸 수 없었다. 아니... 쓰지 않았다.
그녀가 내 말을 마지막으로 듣는 것보다,
내가 그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듣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내 마지막 말을 듣고, 그녀가 하고싶은 말이 생기게 되는 것보다,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내가 하고싶은 말을 참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별통보에 많은 눈팅들의 리플들이 달렸지만,
그녀는 더 이상의 접대멘트없이, 그냥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떠나는 마당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구구절절한 해명을 하기보다는,
굵은 이유 하나만 만들어 변명하고, 많은 리플들엔 침묵하며 떠난 그녀.
다른 사람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녀의 그런 이별방식은,
적어도 내겐 충분히 이해가능한 방식이었다.
도대체 난!... 그녀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걸까?...
4.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아프지 않을거다.
단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자신을 사랑한 상대방에 대해,
연민의 정이나... 안타까움이 변한... 일말의 미안함같은 건 남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사랑한 사람은... 많이 아프다.
만남과 이별이 쌍둥이이고,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이 쌍둥이이고,
행복과 불행이 쌍둥이이고,
그 모든 감정들이 얽힌 씨줄과 날줄이 삶을 만들고,
삶이란 것에는 자신으로선 전혀 원하지 않는 불행과 슬픔들이 매우 많이 감춰져 있고,
그런 불행과 슬픔들이 자신을 더욱 성숙시켜가는 자양분임을,
그런 모든 것들을 진작에 모르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사랑하는 자는... 항상 아프다.
얼굴없는 사이버상에서 가정이 있는 한 여인을 사랑하는 건
어차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임을.
그런 한계선을 그어놓고, 마지막의 내 상처를 예상하며 해온 사랑.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별의 아픔이 덜하진 않다.
해피엔딩은 결코 없을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내 감정의 흐름을, 긍정적이고 편하게 자의적으로만 해석하며 지내온 두어 달.
5.
그 때 설사 내 감정의 옷자락을 붙잡았다고 해도,
내 이성이 감정을 결코 이기진 못했으리라.
사람 마음이란 것이... 마음먹은대로 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니... 울지 말자.
그래도 슬퍼서 눈물이 흐른다면,
짧았던 만남끝에 단호한 이별을 고한 사랑의 섭섭함에 울기보다는...
애당초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나 자신의 미련함에 슬퍼하며 울어야한다.
내가 그녀 허락도 없이 그녀를 사랑할 자유가 있었다면,
그녀에게도 애초부터 나의 사랑을 암묵적으로 거부할 자유가 있었으리라.
현실에서의 사랑도 동상이몽이 허다한데, 사이버상의 사랑은 더 말해 무엇하리.
그러나, 그녀가 날 사랑하지 않는 걸 알았더라도,
난 게시판에서, 그녀에게 끊임없이 사랑노랠 불러주고 싶었다.
내 노래를 들어... 그녀가 행복해한다면... 그런 그녀를 보는... 나도 행복할테니까.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워, 나로선 도저히 사랑노래를 부르지 않고는,
참을수가 없었던 까닭도 있었다.
난 게시판에서 그녀에게 사랑노래를 불렀을 뿐이고,
그녀 또한 게시판에서 조금은 타인들의 눈치를 보며, 수줍게 내 노래를 들어주었을 뿐이다.
그러나...그녀의 남자는... 내 글을 본 후 왜 그렇게 크게 문제시했을까?...
자신의 아내가, 사이버상의 다른 남자가 부르는 사랑노래를 듣는 걸 질투한걸까?...
그녀에게 넘치는 호의적 감정을 보인 남자는, 한 두사람이 아니고 열여명을 넘었는데...
대부분의 남녀가 모두, 공개적으로 그녀를 좋아했는데...
다같이 부르는 사랑의 합창에서, 내 목소리가 단지 좀 더 다정했을 뿐인데...
6.
정말로 결혼이란!... 누가 말했듯이 사랑의 무덤인걸까?...
결혼하고 나면, 사랑이란 종류의 단어와 감정은 뇌에서 삭제해야 하는걸까?...
남자든 여자든... 가정을 가진 후의 사랑이란 단어는, 불순한 금지어일까?...
만일 그렇다면...
결혼을... 안한 게 아니라 못한...
내 고독하지만 행복한 지금의 처지에 경배!... ㅠㅠ...
그러나...
내 감정을 잠시잠시 속일 순 있어도... 아픔을 완전히 덮을 순 없다.
그녀를 기억하려는... 내 눈물담긴 술잔과 핏물같은 음악들...
그녀는 떠나갔어도... 내 가슴속에 그녀는 오래도록 살아있기를...
그녀에 대한 추억이... 더 이상 아픔이 아닌, 행복감으로 느껴질 때 까지는.
내가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내 사랑이 욕심이나 집착이 아니었다면...
언젠가는 그녀는 내 가슴속에 행복함으로 자리잡을거다,
아마도... 그렇게 될거다.
난!... 결국 그렇게 되리란... 자신감이 있다.
7.
매년 아프기만 했던 봄!...
그러니 올해도... 별 특별한 건 없다.
아픈 가슴을 과산화수소수같은 술로 소독해내고 치료하며...
몇곡의 음악을 끝없이 반복해 들으며...
이렇게... 또 한번의 봄을 나는거다.
그녀를 추억하다 보면, 여태껏 지나왔던 다른 해의 봄날과 같이,
그리 무료하진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그녀는 떠나도... 그녀의 지난 글들은 게시판에 오롯이 남아있으니까.
그녀의 글들을 읽으면, 그녀의 느낌이 전해져온다.
안녕!... 내 사랑!...
살아가다보면... 어디선가 꼭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고 믿어.
사이버 세상이든, 현실이든...
내 그리움이 여기서 더 깊어진다면,
언젠가 어디선가 결국 만나질꺼라는...
그런 소망 하나, 가슴깊이 간직하며 살아가려 한다.
그녀를 위해서가 아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PS. 그녀가 내게 한 이별의 말의 형식은... '안녕'이었다.
안녕!... 안녕!^^... 안뇽?... 안녕ㅠㅠ... 이 아닌...
그냥... '안녕'...이었다.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