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풍경

당신에 갇힌 봄

라즈니쉬 2009. 4. 2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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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ldova - Sergei Trofanov >

당신에 갇힌 봄

여름같은 봄날,
당신!... 지난 주말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유쾌하거나 또는 그저그런 영화 한 편을 보고,
고기굽는 연기를 피해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고,
백화점에서 봄 원피스를 하나 사 입고...
여느때처럼 가족들과 함께,
그렇게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셨나요?

저는 아직 당신과 제가 함께 머물렀던 게시판을,
이렇게 떠나지 못한 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당신이 남긴 꽤 많은 글의 제목들을 바라보며.

읽고 또 읽어서 이젠 글의 수많은 제목들만 봐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글의 내용들.
당신의 웃음과, 아픔과, 기도가 담겨있는 많은 글들. 

제가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제 생각으로 인해 당신이 아프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당신의 가슴이 아닌, 제 가슴만 아플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주말이 아닌 평일의 당신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공원 하천변에 나가서
사랑스런 애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겠지요.
내딛는 신발의 코끝에 매달린 생각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걷다
어느 새 생활체육센터에 도착해서
노년의 무리에 섞인 막내로서 사랑을 받으며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운동을 하겠지요.
돌아오는 길에 때때로 가슴의 구멍이 느껴진대도
이내 저녁찬거리 준비를 떠올리며 마음이 바빠지겠지요.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 어느 날이면,
가슴속 우울을 쏟아놓고 싶어져서
컴 앞의 자판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도 있겠지만
이내 당신 남편의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떠올리고선
작은 억울함을 느끼며 모니터앞을 일어서겠지요.

불쌍한 당신의 영혼은 가정이란 새장에 갇혀있고
저는 당신이란 영혼안에 갇혀있습니다.
당신과 저는, 서로가 서로를 구해주지 못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이 우울한 봄날을 빠져나가야 할 뿐. 

당신이 공원숲이나 하천변을 매일 산책할 때
코끝을 살짝 간지럽히고 도망가는 바람을 만나면
머리결을 슬쩍 흐트리고 도망가는 바람을 만나면
게시판에서 당신에게 장난걸고 도망치곤하던 사람
한번만이라도 그 사람을 떠올려줬으면 하는 생각.

산책길의 당신을 가볍게 감고 도는,
단지, 그런 한자락 바람으로만 살아갈 수 있기를...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은,
단지 그런 관계일 수 있기를.

당신과 저의 봄은...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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