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사회

은밀한 개혁

라즈니쉬 2006. 4. 14. 23:14
 
청와대 인사 만만히 보지말라 “아! 이게 개혁이구먼”
한국은행 부총재 인사를 통해본 개혁론…“세상이 이렇게 바뀌는군”
입력 :2006-04-13 10:44   장경순 아시아경제 정경팀장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는 참 많다. 무조건 정권에 적대적인 언론조차 일일이 따라다니며 ‘코드가 어쩌고저쩌고…’ 할 수도 없을 정도다. 그러다보니까 정작 부실인사가 발생하는 것은 적대언론조차 관심을 안 갖는 전문직군이다.

한국은행과 관련해 대통령이 임명해야 하는 자리는 모두 8개다. 이 가운데 한은 총재 정도는 국민의 관심이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하지만 부총재 1명, 금융통화위원 6명은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기자들의 관심도 끌기 어렵다.

내가 속한 매체의 기자가 “부총재 인사는 어떻게 됐냐”며 청와대 관계자에게 묻자 “이런 거 물어보는 기자는 여태껏 처음”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고 한다.

2년 전 극심한 금리정책 난조의 원인이었던 금통위원 인사도 대부분 무관심 속에 이뤄졌다. 이번 부총재 인사도 마치 중앙노동위원장 인사에 끼워 넣듯 발표됐다.

하지만 부총재 인사에 대한 평가는 2년 전 금통위원 때와 정반대다. 특별히 인격이나 능력이 더 뛰어난 후보를 골랐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통화정책을 다루는 한은 부총재 제1의 임무에 비춰보면 경합에서 밀린 사람이 더 앞섰다는 게 객관적 평가다.

이번 인사가 잘됐다는 첫 번째 이유는, 기관장인 이성태 한은 총재의 장단점을 너무나 잘 보완해 줄 맞춤형 인사가 됐다는 것이다. 이성태 총재는 경제 분석과 금리 결정 등 이른바 ‘가방 끈’에 관한 업무라면 청산유수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달변을 자랑한다. 그러나 심하게 ‘낯을 가리는’ 성격이 흠이다. 또 인사, 노사, 대국회업무 등 한은 내 ‘3D’에 해당하는 업무는 문외한이란 혹평도 얻고 있다.

이승일 부총재는 바로 이러한 3D 업무에 거의 평생을 보내온 사람이다. 대신 총재의 홈그라운드인 금리나 경제전망에 대해서는 “무식한 나 같은 사람한테는 묻지 말라”는 핑계를 ‘과감하게’ 들이미는 인물이다.

사실, 한은 인사로는 조금 경력이 처지는 듯한 인물을 예상외로 발탁한 것이 이번에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인사 대상 기관에 대해 치밀한 연구가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또한 청와대 인사가 아무리 관심 밖 영역에서도 허수로 이뤄지는 법이 없음을 적대 언론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알린 결과이기도 하다.

다만, 총재-부총재 간 상호보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순리대로 유력후보를 왜 선택하지 않았냐”는 비판을 살 소지는 있다.

그러나 이번 인사가 가장 큰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음지의 인물’을 발탁했다는 대목이다.

▲ 장경순 아시아경제 정경팀장 
사실, 한국은행 직원들 간에는 “세상이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원래 잘 나가던 사람들만 계속 잘 나간다”는 자조적 분위기가 거의 한계 수준에 달해 있었다.

주요 간부 인사일수록 특정 지역 출신이 득세함은 물론이요, 이른바 엘리트 직군 한 두 부서 출신이 아니면 부총재보 이상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심지어 인사 담당 집행간부도 정책기획국이나 조사국에서의 명성이 중시됐다. 그런 좋은 직군을 가는 것 자체도 실력보다 학연, 지연이 필요하던 게 우리의 과거다.

여기에다 때에 따라서는 특정 학맥의 구태스런 움직임이 개입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총재, 부총재 인선에 모두 ‘모 대학 출신들이 똘똘 뭉쳐서 운동하고 있다’는 풍문이 돌아 대다수 한은 직원들의 일할 맛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전혀 뜻밖의 인물이 그동안 바랄 수도 없는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상당수 한은 직원들의 반응은 그동안 세상 바뀐다더니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야 실감한다는 것이다. ‘개혁이 나하고는 전혀 무관한 것’이란 냉소 심리에 난생 처음으로 균열이 가게 만들어준 그런 인사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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