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하루, 간밤에 함께 술마신 동생놈을 데리고선
집에서 10분 거리의 복국집엘 갔었지
술꾼들 해장엔 복국만한 게 없지 않은가?
복국을 먹으며 또 해장술을 한 잔 하다가
동생놈이 담배를 찾는데 나두 담배가 없어...
'아주머니, 담배가게가 먼가요?'...
서빙하는 아주머니 왈,
'나가서 직진하면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답니다'
사러가기 귀찮아서 그냥 참자고 합의를 봤는데...
카운터에 앉아 우리에겐 등돌리고 앉아있던 그녀가
'무슨 담밸 피냐?'면서 '이 담배는 안되냐?'...며
담배 몇개비를 손에 들고 등을 반쯤 돌리네.
동생놈은 드물게도 '말보로 레드'를 피는지라
동생은 여사장의 친절을 그냥 사양했지.
그러구선 집에 돌아왔는데...
며칠 뒤 여사장의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나.
제길!... 그 호의를 왜 그냥 기분좋게 못받아줬을까?...
담배맛이 차이나면 얼마나 난다구?...
그 집은 일전에도 한 번 갔었던 집이고,
그 때에도 식사하고 나오며 여사장에게
무슨 길을 물어봤었더랬는데...
그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왜 담배 몇개비를 손에 들고 배려하는 모습이
그렇게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걸까?...
얼굴만 이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하는 유행가처럼
얼굴보다 그 맘씨가 더 이쁘게 느껴진걸까?
2.
그 날 이후로 혼자 있을때면 그녀가 떠오르는거야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그녀의 옆모습이
가슴속에 아련한 여운으로 남아 가시질 않는거여.
그 뒤론 동생넘과 한 잔 하는 주말이거나
술 한 잔을 한 이튿날엔 복국집엘 갔었지
이유를 묻는 동생에겐 입 딱 다물구서...
동생놈은 '아, 왜 자꾸 그 집엘 가려 해?
가까운 식당이 지천인데'...라고 했지만,
어떤 날엔 걸어가고 어떤 날엔 택시를 타고갔지.
사실 복지리 한그릇이 7,000원인 식당이 흔치않고
식당 분위기도 비교적 조용해서 간 것도 있지만
그 집엔 그 무엇보다 내 보고픈 그녀가 있단다.
그런데 막상가면 먹고 나오며 계산할 때 잠시 볼 뿐.
그녀는 항상 주방에 있고 홀엔 서빙아주머니만.
어쩌겠어, 내 그녀는 분주하게 돈을 벌어야 하는 걸
하루는 카운터에 계산을 하며 이런 말을 했었던가?...
'사장님을 보면 가슴이 설레여요.
살면서 설레이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것 아닌가요?'...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웃으며 어쩔 줄 몰라 하더군
하긴 밥먹으러 와서 저런 말을 하는 미친 놈이 또 있었겠냐만.
그렇지만 사실 나도 그 말을 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어
어찌보면 참으로 닭살돋는 말이기도 하지만
난 내 가슴의 설레임을 어떻게든 표시하고 싶었던 것 뿐이야
뒷 일이 어찌될지는 일단 그 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어쩌면 자기 감정을 솔직히 드러낸다는 거
경우에 따라서 좋을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거 알아
자신에겐 솔직해서 좋지만, 남들에겐 주책일수도 있다는 거.
3.
바보같아도 어쩌겠어 그리 생겨먹은 걸
나같은 바보가 많은 세상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거야
바보 덕분에 누가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그 뒤로 또 카운터에서 무슨 말을 하고 나왔더라?
'사장님!... 그냥 한 번 불러보고 싶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듣기 새롭네요'...라면서 웃었던가?...
(난, 그녀 눈을 정면으로 보지도 못하겠더라... 등신같은 놈!...)
일주일에 한 번꼴로 한 달 정도를 갔었던가?...
어느 하루는 경찰서 보안계에 조사를 받고오던 날이야
내가 김정일 장군을 찬양하는 친북세력이라는 허위신고때문에.
경찰서를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너무 꿀꿀했어
그녀를 보러가야 내 기분이 전환될 것만 같았어
잠시 망설이던 내 발걸음은 그녀의 가게쪽으로 향했지
근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그녀에게 꽃을 주고 싶더라구
내 기분을 위해선지, 그녀에 대한 맘이 깊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리고 그녀 가게 주변 로터리를 돌다가 꽃집을 하나 발견했지
작은 꽃집엔 왜 그날따라 꽃들이 죄다 그 모양인지.
그렇다고 이 나이에 주책스레 정열의 장미를 건넬수는 없는거고.
연한 색의 개망초 비슷한 꽃 네 송이를 안개꽃으로 감싸달랬다.
그녀를 닮은 꽃, 그녀의 색깔을 닮은 꽃
화려하진 않지만 밝고 이쁘며 소담스런 꽃
내 가슴속 설레임같은 파스텔톤 색상의 꽃을...
꽃다발을 만들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늘어선 운전자들이 죄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더군
제길, 누구에게 줄 꽃을 사본 기억이 청춘시절 한 번뿐이다.
길가는 행인들에게 주책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좀 주책스럽지만 부럽게 보는 사람들도 드물게는 있을까?...
이 꽃을 받은 그녀는 또 어떤 불온한 느낌에 휩싸이진 않을까?...
4.
100여미터 남짓한 그녀의 가게까지 벼라별 생각을 하며
뜨거운 얼굴로 어찌어찌 도착했는데
가게앞에서 서빙 아주머니 두 사람이 감을 손질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복지리 한 그릇 줘요'
내심 아무렇지도 않은 듯 꽃다발을 카운터에 올려놓으니
아주머니 두 분의 그 어색하고 부담스런 눈길이란.
꽃을 들고 온 이 가슴의 두근거림을, 저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세상의 눈길이란 의례히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하자.
평소엔 체면을 중요시하지만 사랑앞에선 체면이 필요없다.
'사장님 방안에 계신데 불러드릴까요?'...
'아니, 안불러도 됩니다. 그냥 놔두세요'
꽃만 전하고 얼굴보면 족한거지 무슨 할 말이 있다구.
그녀는 피곤한 몸을 누이고 쉬고 있는 시간인지도 모르는데
어떤 바보같은 놈의 의미모르는 꽃을 받아들구선
불편함을 감춘 황망한 표정을 확인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복지리를 시켜놓고 소주를 한 병 마셨다.
아주머니 눈길들이 등 뒤를 따갑게 찌른다.
그러고선 주방안에서 수근대는 선명한 단어. '플레이 보이같애!'...
가능하면 이 나이에 저런 말은 안듣고 살아야 하지만,
그렇게 보인다면 지금부터 불온스런 플레이를 시작해보리?...
나란 놈 별 놈 아뇨, 사온 꽃만 좀 봐주시게나.
살다보면 꽃을 주고 욕먹을 때가 왜 없겠는가?...
살다보면 도와주고 배신당할 때가 왜 없겠는가?...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과 계산이 다르니 그런거지.
오래도록 앉아있으면 그녀가 나오길 기다리는 것 같을까봐
허둥지둥 일어서서 암말없이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그녀를 못본 아쉬움을 등 뒤로 한 채 발걸음이 무겁다.
5.
난 그녀에게 할 말이 없다.
아, 있긴 하다. 너무 사랑스럽다구...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래서 무얼 어쩌겠다구?...
강변의 들국화처럼 잔잔하게 웃는 여자.
40대같지만 소녀적 수줍음이 남아있는 여자.
웃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여자.
공원 벤치에서 말없이 손만 잡고 앉아있고 싶은 여자.
놀이공원 회전목마를 태워주고 싶은 여자.
우울할 때면 내 농담으로 웃겨주고 싶은 여자.
술 한잔 하다가 동생놈에게 내 느낌을 말했더니,
'나모르게 날 액세서리로 데리고 다녔구나'..라며
대뜸 말하는 게 '형!... 그건 범죄야'...랜다.
'결혼했다고 했잖어, 물어봤을 때 못들었어?'
'그래서 어쨌다구?... 난 그냥 내 맘이 그렇다구'...
'그런 모순이 어딨어?... 함부로 타인의 마음 뺏지 마'...
집도 절도 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빈 지갑의 사내에게
그 누군들 마음주는 게 그리 쉽다면 장가를 열두번은 더 갔겠다.
동생놈은 여자들이 모두 바보인 줄 알고 있는건지...
살다보면 가끔은 느낌이 좋은 여자를 스치게 된다.
누구나 그런 사람들과는 긴 인연으로 이어가길 원할거다.
그러나 난 결코 그러지를 못한다.
왜?... 느낌이 좋은 여자와는 사랑을 하고 싶어지거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의 여자들은 대부분 임자가 있더라구.
느낌이 좋아도 사랑해선 안되니까 내가 먼저 등지고 만다.
솔직히 딱 깨놓고 말하건데, 복국집 여사장이 과부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해맑은 웃음을 웃는 사람은 절대 과부가 아닐거다.
아이구, 이너므 새끼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려구...
복지리 국물 쳐마시고 속 좀 차려라!...
PS.
시가 좀 이상하게 끝났네. 시가 아니고 넋두리라서 그런가?
내 눈에 한없이 이쁜 그녀가 만약에 과부라면!...
그러면 내 마음이 행복할까?... 아니!... 마음이 아플거야.
이쁜 그녀가 행복해야 나두 마음이 편하지. 그녀는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
에이, 씨이~ 앞으로 복국집 여사장보러 절대 안가야지.
보면 좋긴 좋은데, 막상 보고 돌아오면 지옥이거든. 계속 눈에 밟혀서.
살고싶은 사람과 살아가지 못하는 괴로움,
살기싫은 사람과 부득이하게 계속 살아가야 하는 괴로움.
이런 괴로움이 따르는 게 세상이다.
괴로움보단 어쩜 외로움이 조금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때문에,
난 지금 이 모양 이 꼬라지인 것이다.
어느 누가 나를 향해 '탁월한 선택'이라며 엄지를 좀 치켜세워다오. T.T...
* 곡명 - A Thousand Kisses D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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