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향
정 태 춘
물결 위를 흘러가는 저 바람처럼
사라질 듯 식어버릴 듯
지나온 그 시절
첫 새벽 찬 이슬에 발을 적시며
말 없이 지나치던 수많은 길을
돌아보며 늙어가는 내 인생 한은 없어라
구름 가네, 달이 가네
이 발길 돌아 가네
이 곳으로 저 곳으로 흘러 온 한 평생
바람같이 구름같이
가벼이 떠돌다
깊은 밤 별빛 아래 고향을 본 후
외로움에 재촉하는 가쁜 발길로
돌아가는 길목마다 낯설은 얼굴마다
꿈을 보네, 사랑을 보네
1. '물결 위를 흘러가는 저 바람처럼'...
바람이 불기만 하는 게 아니고... 흘러도 가는거구나.
구름만 흘러가고, 세월만 흘러가는 것인 줄 알았더니...
흐르는 물결위를, 흘러가는 바람이라...
인생!... 흘러가는 물이고 바람인거다.
어떤 정형화된 고체덩어리같은 것이 아니라,
결국은 보이지않게 사라져가는, 액체나 기체같은 것.
그렇기에 삶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어떤 것을 이루고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다 가느냐'...보다는,
'어떤 과정의 시간을 통과하며 무엇을 깨우치고 가느냐'...가 중요한.
2. '첫 새벽 찬 이슬에 발을 적시며, 말 없이 지나치던 수많은 길을
돌아보며 늙어가는 내 인생 한은 없어라'
'첫 새벽 찬 이슬에 발을 적신다'는 표현은 '고단한 일상'이라는 의미인가?
간밤의 술 몇 잔에, 피곤에 골아떨어졌던 육신을 겨우 일으켜세우는 겨울 새벽.
작업복 가방하나 서둘러 메고 정류장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곤 했던...
한 때 내 삶처럼 그렇게 고단한 일상.
'말없이 지나치던 수많은 길'...
여기서 '길'이란 단어는 '일'이란 단어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먹고 사는 일에 메이느라 다른 공간(일)을 돌아볼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는 말일까?...
아니면,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었던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고비(길)를 묵묵히(말없이) 통과해왔다(지나치던)...는 의미일까?...
그 지나쳐온 길을 돌아보며 늙어가는 인생에... 한이 없어라?...
'한'을 '후회'로 읽어낸다면, 후회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마는.
누구에게나 그 시기가 길었거나 짧았거나간에 가장 찬란했던 한 때는 있었을테고,
살면서 가끔씩 자신만의 인생황금기를 추억하다보면,
'내 인생도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자위감에,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질 때도 있으리니.
그런 의미라면 '...한이 없어라'...라고 세상 초탈한 듯 뻥을 쳐도, 속아 넘어가주마.
3. 구름 가네, 달이 가네... 이 발길 돌아 가네
구름가면 청천이 나타날테고, 달이 가면 해가 뜰테고...
과거에 쭈욱 그래왔던 것처럼 또 한번의 갈 '년'과 올 '년' 사이에서...
생각많은 짐승아, 시간의 모서리들을 티나지않게 조용히 돌아나가자.
생에 대한 겸손함인지 아니면 잔머리 굴리다 터득된 또 하나의 요령인지는 몰라도,
지나온 날들에 대해 스스로 만족도 좀 할 줄 알고... (자족)
그런대로 잘 살아온 자신에 대해 위로도 좀 보내고... (자위)
욕심만 앞섰던 지난 날의 자신을, 누구나 다 그러햇다며 용서도 좀 할 줄 알고... (자기합리화)
그러면서 다가오는 '년'에게 또 한 번 은근한 욕망으로 '눈웃음'을 치는 시간.
늘 화려하진 못했지만, 그리 누추하지도 않았던 삶.
일견 한없이 누추했을지언정, 굳이 누추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건 마지막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마는.
먼 훗날, 조금의 양심도 속임없이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내 인생이 비록 화려하진 못했으되, 그래도 '괜찮은 인생'이었다고 자평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그런 바램 한가닥.
2011년 역시... 올해 정도만큼... 그런대로 괜찮을끼구만. ^^...
PS.
노가리 까놓고 보니, 마치 '자신과의 화해'같기도 하군.
하긴, 내 안의 두 놈은 12월 하순경만 되면 연례행사로 '얍삽한 화해'를 시도하곤 하지.
동지섣달 기나긴 밤, 노래가사와 싸움하는 놈은 내뿐일거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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