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faring Stranger
Emmylou Harris
1.
I am a poor wayfaring stranger
Whille traveling thru world of woe
나는 슬픔으로 가득찬 여정의
삶을 영위해가는 가련한 방랑자
Yet there's no sickness, toil or danger
In that bright world to which I go
그러나 내 향하는 그 곳은
병마도 노고도 위험도 없는 곳
I'm going there to see my father
I'm going there no more to roam
내 아버지를 만나러 그 곳에 갑니다
더 이상의 방황없이 나아갑니다.
I'm only going over Jordan
I'm only going over home
나는 가오, 요단강 건너로.
나는 가오, 나의 고향으로.
2.
I know dark clouds will gather around me
I know my way is rough and steep
안다오. 먹구름이 나를 에워싸고
나의 길이 험난한 것을.
Yet beauteous fields lie just before me
Where God's redeemed their vigils keep
하지만 신의 가호속에 있는
아름다운 땅에 이르리니.
I'm going there to my mother
She said she'd meet me when I come
내 어머니를 만나러 그곳에 갑니다
어머니는 말했었죠. 내 가면 그곳에서 만날 거라고.
I'm only going over Jordan
I'm only going over home
나는 가오, 요단강 건너로.
나는 가오, 나의 본향으로.
1.
'삶보다는 죽음이 더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젊은 시절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의 의미를 이젠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삶의 여정에 있어 무수히 반복해서 드러나고 불거지는 부조리...
그리고 세상과 마주칠 때 느끼는 수많은 불편부당함...
그러나 죽음에는 그런 것이 없지않는가?...
'평화'라는 단어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들 삶에 있어서의 평화란 것은,
'죽음의 평화'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순간적이고 위태롭고 깨어지기 쉬운 것인가?...
삶을 기준으로 놓고 보았을 때,
삶의 끝에는 죽음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 '삶의 부조리'의 시발점이다.
그렇지 않고 죽음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수천, 수만년동안 계속되어왔을지도 모르는 죽음의 상태속에서 잠시 깨어나,
어떤 인연으로 생명을 얻어 삶의 순간을 잠시 살다가 간다고 생각하면,
백년도 안되는 삶이라는 찰라적 순간은 그 누구에게나
'축제'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에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삶을 기준해서 보면 '삶은 부조리'일 뿐이지만,
죽음을 기준해서 보면 '삶은 축제'가 되는거다.
'삶보다 죽음이 더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책에서 읽었던 그 문구를,
지금 나는 그렇게 이해하려 한다.
2.
나이가 들어갈수록, '죽음'이란 단어에서 '평화로움'을 느끼게 되는 건 왜일까?...
못해본 것, 누리지 못한 것도 많은, 어떻게 보면 참 억울한 인생인데 말이다.
하긴, '죽음'을 평화롭게 안느끼고 '억울'하게 느끼면 무슨 별통수 있나?...
'억울'함을 느낄수록 자신이 살아온 인생만 더 초라하게 느껴지지.
어떤 미련때문에 또는 삶을 놓기가 못내아쉬워 아등바등하다간, 임종의 순간에 좋은 곳에 못간다.
'영혼이 구천을 떠돈다'는 말이... 그래서 생긴걸꺼다.
삼천포 도착하기 전 퍼뜩 결론을 말하자면,
"삶은 축제요, 죽음은 평화로다"...
살아있으니 즐겁고, 죽으니 평화로운 본향(삶의 원 상태)으로 돌아가게 되어 기쁘도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거지.
한마디로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게 '꽃놀이패'라는 거지. ㅋㅋ...
PS.
오늘 이 노가리는, 우리 군의 연평 사격훈련에 북한이 대응하여
서울하늘에 포탄이라도 한 방 떨어질까 안떨어질까를 생각하며,
일촉즉발의 하루를 보낸... 그 부산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