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풍경

들 가운데서

라즈니쉬 2010. 2. 19. 11:05


 




들 가운데서
                                 
정 태 춘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
저 들가에, 저 들가에 눈 내리기 전에
그 외딴 집 굴뚝 위로 흰 연기 오르니
바람아 내 연을 날려줘

그 아이네 집 하늘로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
저 먼 산에, 저 먼산에 달 떠오르기 전에
아이는 자전거 타고 산 쪽으로 가는데
바람아 내 연을 날려줘
저 어스름 동산으로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
저 하늘 끝, 저 하늘 끝 가보고 싶은 땅
얼레는 끝없이 돌고, 또 돌아도 그 자리
바람아 내 연을 날려줘
들판 건너 산을 넘어





반복해 들을수록 슬픈 노래다.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라는 가사가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꿈을 날려줘'...라고 자꾸 들려서...
날지 못하고 있는 어떤 이의 꿈!...
그 꿈을 다시 한번 이루려, 애타게 바람을 찾고있는 사람.
그 '바람'이란 것이 어떤 이에겐 '돈'일수도 있겠다.  
'돈'으로서 실현가능한 꿈도 있을테니까.


어릴 적 도시의 좁은 동네골목 어귀에서,
또는 시골의 벼나락 밑둥만 남은 초겨울 논바닥에서,
바람만 조금 있으면 언제든지 날려먹을 수 있던 연.

그 옛날 어릴 때 연 날리기는 참 스릴이 있었던 것 같다.

연이 가라앉으면 '얼레'(= 자세)를 돌려서 연줄을 감아줘야 하고,
연이 너무 하늘로 솟구치면 줄을 조금씩 풀어줘야 하고...
그러면서 더 높이 더 멀리까지 날리는 애가 잘 날리는 애다. 
옆에서 날리는 애의 연줄과 내 연줄이 엉키지않게 조심도 해야 하고,
연줄 끊어먹기한다고 연줄에 초를 칠하고 거기다 유리가루도 묻히고...

가끔 연줄이,
전선줄이나 전봇대에 엉켜 부득이하게 끊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푸른 창공에 잘 날고있던 연줄이 무엇때문인지 갑자기 툭~ 하고 터져서
연이 하늘로 아득히 날아가 버릴 그 때의 허망함이란!...

사각형 한지위에 얇게 깎은 대나무 살을 밥풀로 붙이고,
양쪽 모서리엔 날개를 붙이고,
아랫쪽 모서리엔 꼬리를 붙여서 당시엔 대세였던 '꼬리연'을 만들어주던 남자.
연 만드는 옆에 붙어앉아서 제발 꼬리 좀 길게 만들어달라고 떼를 쓰던 아이.
꼬리가 너무 길면 무게때문에 연이 잘 날아오르지 못한다고 설명해주던 그 남자.
이틀간을 나무를 깎고, 니스칠을 해서 공예품같은 연 얼레를 만들어주던 그 남자.
니스칠이 채 마르기도 전에 동네골목에 얼레를 자랑하러 들고 나갔다가,
아랫동네 이름도 모르는 나쁜 놈에게 어~어~ 하다가 뺏기고 들어온 아이.
그 아이를 마루에 앉아서 아무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
그 남자는 그 때 그 아이의 떡잎을 이미 알아봤던 것일까?... ^^
그 남자!... 지금은 어디갔나?...
내가 날려먹은 연을 찾으러 하늘로 날아갔다.

연은!... 우리들의 꿈이다.
세상의 사나운 바람을 미처 살피지 못한 이유로, 연줄이 끊겨 날아가버린 연.
그렇게 날아가버린 연같은 우리들의 수많은 꿈들.
그러나 연줄을 잡을 힘만 있다면, 연줄 끝에 다시 연을 매달아야지.
날리지 않는 연은 한낮 종이일 뿐이고, 시도하지 않는 꿈은 망상일 뿐.
연줄 끊길까봐 연을 안날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삶이란!... 어떤 결과보다는, 연을 날려먹는 그 재미에 살기도 하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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