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님은 그래서, 자신만의 그런 방식으로 승리해 간 것일까?...>
운 명
전 인 권
어제는 비가 내리고 오늘은 다시 멈췄다
다시 또 태양이 빛나고 들꽃 한송이
세월이 그렇게 했다 나도 모르는 새
아무도 몰래 흘린 나의 눈물위로
비내리고 바람불고 다시 햇살비추고
목말랐던 대지위로 다시 꽃피고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할 수 있겠지
다시 또 태양이 빛나고 들꽃 한송이
세월이 그렇게 했다 나도 모르는 새
아무도 몰래 흘린 나의 눈물위로
비내리고 바람불고 다시 햇살비추고
목말랐던 대지위로 다시 꽃피고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할 수 있겠지
다시 또 태양이 빛나고 들꽃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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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를 긁적거리며 생각해본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언제쯤 끝날지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갈등.
인간세상에서 갈등과 반목과 질시가 없기를 바라진 않는다.
각자의 경험과 입장과 생각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일테니까.
다만, 그런 과정후에 서로가 조금 더 성숙해 갈 수만 있다면.
서로의 다름이 서로의 성숙을 견인해 갈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 상대방의 그것보다 옳다는 신념.
그런 신념이 없었다면 이 작은 공간에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서로 힘들게 반목해 오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서로의 신념은 서로에게 존중받지 못한 채 뒷전에 앉았고
비수같은 단어들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춤을 춘다.
그동안 소통을 불가능하게 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신념이 달라서라기 보다는, 어쩌면 서로에게 던진
언어의 투박함과 날카로움때문이 아니었을까?...
갈등을 해결하고자 선의로 발 들이는 자들마저 언어의 포로가 되는 상황.
언어가 소통의 도구로 쓰이지 못하고 갈등의 유발인자로 쓰이니,
언어로서는 더 이상 풀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은 아닐까?
2.
이쯤에서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돌아봐야 한다.
이 공간의 우리 모두가 결코 바보가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가 이 곳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도 흔하게 듣는,
보수꼴통!... 수구꼴통!... 진보꼴통!... 좌파꼴통!...
빨갱이!... 돌아이!... 그 외 세자 짜리 욕들!...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당신은, 저 단어들을 어떻게 정의해 낼 수 있는가?
저 단어에 포함되는 자와 포함되지 않는 자들의 경계선을 그어낼 수 있는가?
당신이 내리는 저 단어들의 정의가 보편타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인가?
당신 마음속으로는 설사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도 대중앞에서 표현시에는
그 단어와 사람이 합치한다는 타당한 증명을 해내어야 하는 책임감이 따른다.
그리고 저런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마음의 문과 대화의 문은 닫겨버린다.
언어는 소통을 위한 것이지만, 저런 단어는 소통단절을 위한 단어일 뿐이다.
싸움을 하더라도 저런 단어로 공격해서는 결코 상대방을 이길 수가 없다.
상식적인 말로서 관중들이 고개끄덕일 수 있는 보편타당성을 확보해야
싸움에 이기게 되는 것이다.
싸움에서는 먼저 화내면 지는거다. 싸움에서는 먼저 욕하면 지는거다.
화와 욕은 자신의 논리가 부족해서 감정의 통제가 안된다는 증명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돌아보아야 할 것은,
지금껏 서프에서만 쉽게 용인되고 다른 곳에서는 납득되기 어려운 단어들을,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해 온 것은 아닐까?...
3.
어느 날 아침,
우연히 발견해서 블로그에 담았던 어느 정치인의 말 한마디.
"정치평론가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아주 세게 비판한 적이 있다.
딱 두번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비판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방식으로 비판해서는 안될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
아무리 비판받을 만한 행위를 했다고 해서, 모든 방식의 비판이 정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날 아침... 매우 가슴이 아팠다.
그 동안 내가 뱉어온, 정도를 벗어난 말에 상처입었을지 모르는 사람들.
넷상이라 얼굴도 모르는 그들의 생각이 오전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 잘난 가치관과 신념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을까?...
내 서투른 갈등조정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소진시켰던 것은 아닐까?...
좀 더 바람직한 언어로 상대방의 이해를 도와갈 수는 없었던 것일까?...
내 보잘 것 없는 자존심에 상처입어, 상대에게 몇 배의 굴욕감을 안겨주려
한 적은 없었던가?
어느 정치인의 짧은 몇마디 반성이 내 자신의 일로 뼈저리게 다가왔다.
4.
"아무리 비판받을 만한 행위를 했다고 해서, 모든 방식의 비판이
정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의 말을 나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
"상대의 잘못이 크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내 작은(?) 잘못까지
모두 용인되어 지는 것은 아닐거다."...
그러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일 문득 나의 죽음이 닥친다면, 지금 이 게시판에는 어떤 말을 남겨야 할까?...
이 공간에서 내가 아프게 한 사람들에게 사과를 구하고 싶다.
특히 '칸'과 '단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어떤 사실에 대한 사과라기보다는, 내 부족한 인격에서 나온 언어들에 대한 사과이다.
그동안 칸의 닉의 변화에 맞춰 수시로 변경시켜 온 나의 닉들.
눈팅, 그린맨에미, 같잖은그린맨, 그린존맨, 찌그러진 태양,
태양을 삼켜라, 칸을 삼켜라, 지금의 머라칸까지...
위의 닉들로 내 잘난 신념과 비수같은 말들의 글을 올릴 때마다,
상대당사자인 칸과 단타는 내 글을 보고 별 일 없듯이 웃을 수 있었을까?...
출퇴근하며, 일을 하며, 밥을 먹으며, 잠자리에 들며...
나의 글로 인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나로선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바램으로선 당시에 두 사람이 허허롭게 웃고 넘겼었기를 바랄 수 있을 뿐이다.
(* 칸과 단타 또한 누구에겐가는 상처를 줬겠지만, 그것을 푸는 것은 그들의 소관일 뿐
내 소관에 속해있는 것은 아니므로 나로선 내가 준 상처에만 사과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외에 내가 미처 알지못하는, 내 말에 상처입은 사람들께도 사과를 구한다.
쌍방의 오해일 수도 있고, 신념과 가치관과 언어습관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이해심보다는 나의 이해심이 더 부족했을지 모를일이다.
사과한다. 지난 시간의 내 부족함에 대해 넓은 아량으로 이해를 구한다.
5.
어떤 당사자의 해명을 요구하는 사람들.
그에 대해 어떤 해명도 필요없다는 듯한 태도의 사람들.
지금 내가 쌍방의 생각들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음 대선 지지자가 누구라는 것을 아는 그것만으로,
어떻게 한 사람을 쉽게 평가하고 재단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지지한다고 해도, 대선까지 남은 시간동안 각자 현재의 지지후보가
어떤 실수를 하고, 다른 후보가 우연한 기회에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일거에 사로잡을지...
그래서 각 개인의 지지후보가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매달리고 있는 이 공간의 논쟁은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해명이나 사과를 하거나 안하거나 하는 문제는 내가 아닌 타인의 몫이다.
내가 아무리 요구하더라도 상대방이 응하지 않으면 그만인 문제.
그러니 타인의 결정에 매달리기보다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나를 위한 일을 하면 될 일이다.
6.
류시화의 잠언시집에 나오는 시 중에서 한 편.
기억을 더듬은 시의 대략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저번 주에 친구와 같이 어느 식당엘 갔다.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의 밥이 먼저 나가도,
우리의 밥은 나오지 않았다.
친구는 여종업원을 불러서 늦게 나오는 것에 대해
그녀의 귓전이 벌개지도록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
그저께 그 친구가 죽었다.
그렇게 죽을 줄 알았더라면
식당 여종업원에게 그만한 일로
그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가 있었을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다.
이제 10여일 후면 제야의 종소리를 듣게 된다.
모두 올해 1년을 돌아보며 정리할 시간이다.
맺힌 것이 있다면 가능한 풀고 갈 시간이다.
나는 오늘의 사과로 '경제주식방'에 대한 마지막 인사를 하고자 한다.
노래 가사가 좋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할 수 있겠지..."
'이명박의 국민'들과도 우리는 결국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개념없음을 탓만 하기보다는, 우리 사랑과 논리의 크기를 더 키워나가야 한다.
그들은 어쩌면 '또 다른 입장의 나'일 뿐일테니.
대한민국 가짜 보수와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옹졸함이 끝간데 없다고 해도,
저들의 옹졸함을 우리의 큰 사랑이 녹여가야 한다.
그래서 그들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진보진영 국민의 '운명'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저들을 녹여야지, 아니면 옹졸한 저들이 우리를 녹이겠는가?...
PS. 아무쪼록 서프라이즈 경제토론방의 발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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