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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 현재 대한민국 안에 두 개의 견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정치권력이 신문을 통제.위협하고 있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이전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6.29 이후 역전된 시대상황을 따라 이제는 신문권력이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조중동 삼형제는 박정희.전두환 시대부터 통용돼 왔던 전통적 견해를 고집하면서 지금도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문민독재가 자신들을 억압하고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무현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조중동이 자신들의 정치적 우군인 한나라당과 짝을 맞추어 무소불위한 언론의 힘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좌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아무래도 그 답은 정치적 성향따라 다를 수 밖에 없겠다. 한나라당 지지자들과 조중동 논조에 길들여진 독자들은 지금도 언론탄압이 자행되고 있다고 신앙처럼 굳게 믿고 있을 것이고, 민주와 통일을 지지하는 개혁세력들은 선출되지 않은 언론파워의 막가는 행태에 넌더리를 치고 있을 테니까.
이러저러한 점들을 고려하면서 오늘은 동아일보가 자랑하는 나대로선생의 만화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신문이 자신의 정치적 기호에 따라 각 정당별로 어떻게 낯빛을 달리 하는지 이를 통해 조금은 짐작하실 수 있을 게다.
나대로선생의 만화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은, 만화의 소재가 철저하게 열린우리당에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넉넉하신 분들은 동아일보 만화를 쭈욱 살펴 보시라. 거기서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내용를 발견하기란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에 지적한 바 있으니 말을 아끼기로 하고.
나대로선생의 만화는 또한 거침이 없기로 유명하다. 독설을 퍼부을 때 뿐만 아니라 실명을 적시해 정치인들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실 게다.(상단 두번째에 위치한 '李'는 이강철 수석을 가리킨다. 3월 30일자 만화 윗칸에 이미 이름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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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3월 28일, 3월 30일, 4월 1일, 3월 27일, 3월 25일, 4월 17일자 나대로선생 만화ⓒ동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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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한 개인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당을 거론할 때도 나대로선생은 가리는 법이 없다. 4월 18일자 만화를 보라. "공천 줄테니 억대 특별당비 내놔" 하고 요구하는 '(열린)우리당'의 이름이 HD TV만큼이나 또렷하고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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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의 '특별당비' 의혹을 꼬집은 4월 14일자 만화 ⓒ동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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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의 만화는 열린우리당 경기도당이 몇몇 신청자에게 특별당비를 요구했다는 보도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그냥 넘어가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몇 군데 눈에 띈다.
우선 뒤늦게 열린우리당의 특별당비 의혹을 부각시키고 나선 저의가 수상쩍다. 아무래도 한나라당의 공천장사 파문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회색빛 뇌세포를 스친다는 얘기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특별당비는 전액 공개된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공천 헌금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게다가 열린우리당만 특별당비를 모금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동아일보는 나대로선생의 만화와 더불어 같은 날짜 사설로까지 <여당의 특별당비 모금도 '공천 장사'다>고 대대적으로 나발을 불었다.
더 웃기는 건, 사설에서 "열린우리당 경기도당이 광역 및 기초의원 비례대표 후보 신청자에게서 수천만 원씩의 특별당비를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말해 놓고는, 정작 나대로선생 만화에선 "공천 줄테니 억대 특별당비 내놔" 하고 액수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일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는 거다.
이재에 밝은 나대로선생께서 설마 수천만원과 억대의 차이를 몰라서 그랬을까? 혹 한나라당의 억대 공천헌금을 물타기 위해서 단위까지 부풀린 것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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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의 '공천 장사'를 꼬집은 4월 14일자 만화 ⓒ동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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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는 건 또 있다. 한나라당의 공천장사를 빗댄 4월 14일자 만화를 18일자 열린우리당 만화와 비교해 보시라.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발견했는가? 그렇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한나라당'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모든 정당에게 두루 적용되는 실명 적시의 원칙에서 유독 한나라당만 제외되어 있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평소 거침없는 성향대로 '공천장' 밑에 '한나라당'이라고 써 넣어도 될 것을 왜 굳이 궁색하게 '....당'이라고 처리했을까? 같은 날 작성된 사설을 통해서 나대로선생의 고충(?)을 헤아려 보자.
썩은 내로 진동한 한나라당의 공천장사 파문을 다룬 14일자 사설 <한나라당 ‘공천 장사’ 대대적 整風 계기돼야>는 제목부터 건설적이다. <李총리의 '독한 표정' 보는 국민 기분>(사설, 2006.3.2)이나 <金진표 부총리 ‘自私高 정책 뒤집기’ 역겹다>(사설, 2006.3.25) 처럼 독하지도, 역겹지도 않다. 오히려 '공천장사'를 '대대적 정풍 계기'로 삼으라며 격려하는 듯한 분위기가 흐뭇함마저 안겨준다. 사설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 가관이다.
"....다수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전 보수 야당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잖은 꾸지람이나 "한나라당은 생각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훈계는 차라리 애교에 속한다. 사설 마지막을 보시라. 어김없이 열린우리당 멱살을 잡고 간다.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매관매직 게이트’라며 한나라당을 공격하기에 앞서 제 발등을 살펴봐야 한다.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에 대한 정당 공천제가 비리를 키우고 있을 소지가 많다. 거기엔 열린우리당도 예외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스스로 고해를 시작했다는 점에 대해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의 치부를 비판하는 척 하면서 사설 끝무렵에 열린우리당을 끌어안고 물구멍에 잠수하는 모양새가, 지난 번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을 다루면서 사설 맨 마지막에 "한편 이번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기도 또한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과 영낙없이 닮았다.(<최연희 전 총장, 의원직 사퇴해야>,2006.2.28) 더불어 비싼 밥 먹고 폭탄주 반주 삼아 노래 부르는 그렇고 그런 사이라서 그랬을까? 그래서 차마 '...당' 앞에 '한나라'라는 세 글자를 써 넣지 못했나?
폐일언하고, 엿장수가 제 마음 내키는 대로 가위질 하듯이, 동아일보 나대로선생도 얼마든지 제 멋대로 붓을 놀려 정치를 농(弄)할 수 있다. '나대로' 한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단, 그럴 때라도 지켜보는 눈들을 생각해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 주셔야 한다. 자기는 '바담 풍' 하면서 남더러 '바람 풍' 못한다고 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정말이지 "엔~엔~엔간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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