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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닮았다.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다. 단편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단지 발가락이 닮았다거나 왼손잡이가 닮은 정도가 아니다. 어찌나 찐하게 닮았는지 거의 판박이 수준이다. 느끼는 것, 말하는 것,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숫제 일란성 쌍둥이다. 누구 얘기냐고? 바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이야기다.(이하 '조동')
'조동'이 20일 각각 사설 한편씩을 쏘아 올렸다. <지금도 돌아가는 한나라당 필패의 수레바퀴>와 <한나라당 ‘대선 必敗論’과 李시장의 처신>. 앞의 것이 조선일보 것이고, 뒤의 것이 동아일보 것이다. 보다시피, 둘 다 똑같이 '한나라당 필패론'을 노래하고 있다. 이날자 중앙지 사설 가운데 '한나라당 필패론'을 소재 삼은 것은 이 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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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3월 20일자 조선일보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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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3월 20일자 동아일보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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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 대선에서 이기는 법을 모색하기 위해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주최한 토론회 요지를 소개하고 있는 첫째 단락은 마치 판화로 찍은 것처럼 똑같다. "개혁하겠다고 하다가 대세론에 안주하고 그러다가 수구보수의 모습으로 돌아가 국민에게 버림받는 전철을 계속 밟고 있다”는 국민대 김형준 교수의 살가운 충고가 양쪽 지면에서 스테레오 사운드로 들린다. 두 신문지가 사설 제목으로 뽑은 '대선 필패의 법칙'도 여기서 따왔다.
참석한 의원들의 숫자조차 썰렁하고 열의마저 없는 산만한 토론회 풍경을 소묘하고 있는 둘째 단락도 문자만 약간 다르지 내용은 거기서 거기다. 차이점이 겨우 눈에 띄기 시작하는 대목은 그 다음부터. 사설 제목이 시사하듯, 동아일보가 전반부에서 '한나라당 대선 필패론'을 지적하고 후반부에서 그와 연관해 이명박 시장의 처신을 꼬집고 있다면, 조선일보는 이 시장 얘기는 쏙 빼먹고 애오라지 '지금도 돌아가는 한나라당 필패의 수레바퀴'만 뚫어져라 쳐다 본다는 게 조금 다르달까.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율 1위인 이명박 서울시장의 처신도 ‘대선 필패론’에 힘을 실어 준다"로 시작하는 사설 후반부에서, 동아일보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 테니스' 논란과 경박한 입을 문제삼는다. 모양새만 보면 제대로 짚을 건 다 짚은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역시나'다. 동아일보 사설이 거들고 있는 이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엔 거기 반드시 담겨 있어야 할 논란이나 의혹이 없다. 알맹이는 없이 껍데기만 붙들고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서 겨우 한다는 말이 "사과는 했지만 문제의식이 안이하다"는 식이다.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른 체 입다물고 있는 조선일보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시장의 '황제테니스 건'에 대해서 입 한번 뻥긋하지 않는다. '이해찬 골프'는 훤히 꿰뚫고 있어도 '이명박 테니스'는 전혀 모를 뿐더러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는 투다. 의혹 폭로와 추궁이 본디 조선일보의 장기 중의 하나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지의 사실인데 어쩌다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골프는 공직자가 가까이 해서는 안될 사치스런 운동이고, 테니스는 만인에게 유익한 대중 운동이라서? 그래서 '황제 골프'나 '황제 테니스'가 그게 그거고, 40만원의 내기골프나 몇백만원에 이르는 접대 테니스가 오십보 백보인데도 까막눈마냥 모른 체 하나? 정말 모를 일. 대한민국 언론의 미스테리다.
'조동'의 닮은 꼴은 마지막 단락에서 절창을 이룬다. 이명박 시장의 경박한 입방정을 질타하는 동아 사설의 넷째 단락은 3월 7일자 조선일보 사설 <긴장 풀린 사람은 이명박 시장 자신이다>의 완벽한 요약판이다. 궁금하신 분은 찾아 읽어 보시라. 조선일보의 목소리가 동아일보에서 울리고, 동아일보의 노랫가락이 조선일보의 애틋한 화음과 구성지게 어우러지는 장관은 직접 구경해야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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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3월 7일자 조선일보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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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조동'이 이처럼 체면불구하고 듀엣을 지어 '한나라당의 대선 필패론'을 미리서 떠들어대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도하는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을, 그것도 한나라당의 2007 대선 전략과 관계된 내용을 '조동'이 이처럼 사이좋게 사설로 언죽번죽 부풀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차마 손대기도 아까워 마냥 끼고 돌던 한나라당과 이명박 시장의 종아리를 '조동'이 이렇듯 손에 회초리를 들고 눈물을 머금으며 매섭게 후려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설마 대세론의 자만에 빠져 다 된 밥에 재 뿌리고 만 2002년의 실패를 더는 되풀이하지 말라는 각별한 경계의 말씀? 설마 2007 대권을 손에 넣기까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치 말라는 엄한 꾸지람?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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