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삼촌의 아내를 사랑하다 (2010)
줄거리
한적한 시골 마을의 유지이자 큰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파보’는 어느 날, 자신의 형이 죽자 고아가 되어 버린 형의 아들 ‘상몽’을 데려와 자신의 친아들처럼 키운다. 똑똑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상몽’을 유학까지 보내 공부시킨 ‘파보’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상몽’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길 만큼 신뢰가 깊다. ‘상몽’이 결혼 적령기에 다다르자 ‘파보’는 적당한 신붓감을 찾기 위해 방콕으로 향하고 그 곳에서 우연히 ‘유파디’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를 보자 조카의 신붓감을 물색하기 위해 온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그녀에게 빠져 들게 되고 결국 ‘유파디’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와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파디’는 잘생기고 건장한 체격의 ‘상몽’을 유혹하고 두 사람은 ‘파보’의 눈을 피해 격렬한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이상 포털 다음 펌)
* 삼촌 '파보'
(이하 기억속의 줄거리)
조카 '상멍'의 짝을 찾으러 간 방콕 연회장에서 '파보'는 외국회사 임원 여비서 '유파디'를 만나게 되어 하루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고향으로 데려온다. '상멍'은 방콕대학을 나와 삼촌의 일을 도우며 생활하고 있다.
'파보'는 '상멍'에게 말하길, '나에게 잘해주는 것처럼 숙모(유파디)에게도 잘해주길 바란다'며 '유파디'의 현지생활 적응을 신경쓴다.
* '상멍'과 '유파디'
'유파디'의 사고방식은 관습에 얽메이길 싫어하는 여자다. 그는 '상멍'에게 책 두 권을 읽어보라며 권한다.
입센의 '인형의 집'과 칼릴지브란의 '예언자'...
( 예언자라는 책의 철학적 문구는 일상에서 대부분 몇번씩은 접해봤을테니 생략하고...
* 인형의 집 : 불충실한 노예처럼 대하는 남편의 집에서 자신의 존재가 인형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그곳을 떠나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사회의 고착된 인습이 어떻게 여성의 성장과 자유를 억압하는지를 진지하게 폭로한 작품으로 이후의 여성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다음 백과사전)
* 자빠져자는 '파보'... 씨바씨바거리는 '유파디'
연령차가 있는 '파보'가 '유파디'의 욕구를 간간이 외면하게 되자, '유파디'는 여자에게 관심이 거의 없는 '상멍'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상멍'도 치명적 매력을 지닌 '유파디'의 유혹에 점점 빨려들어가기 시작하고...
'파보'는 영국 총독 딸을 '상멍'의 배우자로 만들어주려 현지에 초대하지만, 총독의 딸은 부모 몰래 이미 영국 연인이 있다.
극성스럽고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는 어머니에 질려 '이번에 방콕으로 돌아가면 영국 연인을 만나러 영국에 가서 절대 태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며 '상멍'에게 자신의 본심을 말한다. 이 때도 '상멍'은 이미 '유파디'에게 빠져있는 상태이므로 총독의 딸과는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파보'는 사업상의 일로 방콕으로 가며 '유파디'에게 동행을 권하나, '유파디'는 임신을 했다는 거짓말로 동행을 피한다.
'파보'가 방콕에 간 사이에 '유파디'와 '상멍'은 본격적으로 열정을 불태우게 된다.
'파보'의 충성스런 집사는 '상멍'에게 '유파디'와의 관계를 조심하라며 걱정하지만, 그렇게 유순하던 '상멍'은 집사에게 화를 내며 거부한다.
또 한사람의 충성스런 여자 하인에게 두사람의 불륜사실을 듣게 된 '파보'는, 어느 날 방콕에 간다며 함정을 파고 다시 돌아와
두 사람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 묶여서 생활하게 되는 '상멍'과 '유파디'
다음날 '파보'는 두 사람을 불러앉혀 놓고, 두 사람이 원하는대로 영원히 같이 있게 해주겠다며 두 사람의 손목에 길이 1m 50센티 남짓한
쇠사슬로 두 사람을 묶어놓는다. 두 사람은 좋아라하며 한동안 사랑을 불태운다.
그러나 손이 서로 묶인 상태에서 두 사람은 서로가 불편하고 부자유스러울 수밖에 없으므로 일상의 이런저런 짜증과 불만을 표시하게 되고,
급기야 감정의 격돌로 이어져 매일 사소하지만 잦은 다툼을 하게 된다.
* 상자안의 권총을 보고 절규하는 '상멍'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파보'에게 찾아가서 제발 사슬을 풀어달라고 말하지만 파보는 상자를 내밀고 그 안에는 권총이 들어있다.
그 권총은 자살을 하라는 의미다. 또 시간이 흘러 찾아가지만 '파보'는 칼이 든 상자를 내민다.
영원히 같이 있기를 바라는 니들 두사람이 당초에 한 약속을 깨려면 같이 죽으라는 의미이다.
'상멍'은 집사에게 제발 쇠사슬을 자를 도구를 좀 달라고 애원하지만 집사는 말하기를,
'자를만한 도구는 이미 삼촌 '파보'가 다 치웠다고 대답한다.
그러다 '유파디'는 임신을 하게되는데...
'상멍'은 너무 괴로워 둘이 떨어질 수 없다면 권총으로 자살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마주껴앉고 있는 '유파디'에게 자신의 머리를 쏘아달라며 건총을 건네지만, '유파디'는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고 자살한다.
'상멍'은 죽은 '유파디'의 시체를 안고 삼촌 '파보'를 찾아가 이젠 쇠사슬을 풀어달라고 애원하지만,
'파보'는 '죽어서도 영원히 함께 있겠다던 니들 두 사람의 약속을 지켜라'며 거절한다.
시체는 썪어서 부패하기 시작하고 어느 날 '유파디'의 쇠사슬이 묶인 손목이 시체로부터 분리된다.
환각상태에 시달리며 실성한 '상멍'은 쇠사슬 한쪽에 '유파디'의 손목을 덜렁덜렁 메달고 열대우림 숲속을 비틀거리며 헤멘다.
영화 전체 이야기는 집사가 영국 젊은이에게 과거의 일을 들려주는 나레이션 형식이다.
감상
전반부가 '좋아하는 사람('상멍'과 '유파디')과 같이 살지 못하는 고통'을 다뤘다면,
후반부는 "싫어하는 사람('상멍'과 '유파디')과 헤어지지 못하는 고통'을 다뤘다.
사랑의 시작과 종말을 극명하게 대비해서 보여주는 영화.
대부분의 사랑이란 감정이 변해가는 경로를 그리 어렵지 않게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에서 '상멍'이 제독의 딸에게 '유파디'가 준 '예언자'라는 책의 일부분을 읽어주는데...
오랜만에 '예언자'의 몇 구절들을 듣게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20대 초반에 이 책을 접했는데, 각 문장들과 내용이 시처럼 너무 아름답고 가슴에 다가오는지라
직장 근무시절 크리스마스 회식때 남녀 직원들끼리 익명의 선물교환이 있었는데,
그 때 난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을 직접 쓰서 이쁜 액자에 넣어 선물로 준비했었던 기억.
난 '예언자'를 떠올리면 '사랑의 구속'에 관한 구절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서로의 사이에 거리를 두고 바람이 흐르게 하라'...
'떡갈나무(?)도 무슨 무슨 나무의 그늘에서는 살지 못한다'... 뭐 이런 구절들.
이런 문장에 꽂히다 보니 난 지금 배우자의 등짝 대신에 방바닥만 긁어대고 있는건지는 모르지만. ㅎㅎ...
죽고 좋아 못사는 시점에서 서로가 자유롭게 적정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부부관계 또는 사회적 인간관계에선 이 거리를 무시하면 갈등이나 오해가 발생되게 마련이다.
근데 이게 참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건,
직장상사나 동료간의 거리도 너무 가까워서 지랄(^^)인 사람, 너무 멀어서 지랄인 사람들이 제각각 존재한다는거다.
너무 가까우면 부담스럽고, 너무 멀면 또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되더라고.
이 영화의 '상멍'도 '유파디'와의 거리 설정에 유의하지 않아서 결국 결말이 비극으로 치닫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이 영화의 재미는 삼촌 '파보'의 '상멍'과 '유파디'를 벌하는 방식에 있다.
불륜을 저지른 조카와 아내를 단순하게 죽였으면 영화는 별 재미를 못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파보'는 그들의 바램대로 죽을 때까지 영원히 함께 하도록 쇠사슬로 둘을 묶어놓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사랑'이 물론 중요한 요소지만,
'사랑'(또는 불륜)에는 동시에 얼마만큼의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지를 영화는 잘 보여준다.
그리고 서로가 죽고 못사는 두 사람이지만, 그 사랑이란 감정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지와,
두 연인사이의 숨막힐 듯한 밀착된 거리는 그 상황이 실제로 겪어보면 얼마나 지옥인가를
칼릴지브란의 '예언자' 책 안의 구절로써 드러낸다.
정확치는 않지만, '사랑사이에 거리를 두라, 그리고 그 사이로 자유롭게 바람이 흐르게 하라'... 이런 문구다.
이 영화를 본 후,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겠다 싶다.
'비극으로 끝나지만, 저런 사랑이라도 한 번 해보고 죽고 싶다'는 바램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사랑이란 결국 어느 한 순간의 환상, 댓가가 너무 큰 부질없는 감정이다'...라는 사람들.
사랑이란... 파도 파도 끝없는, 인간세계의 영원한 화두이자, 모든 예술혼의 근원이 아닐까?
사랑의 정의를 찾아서
1.
남녀간의 사랑!... 참 영원한 숙제다.
이전에 읽었던 심리치료서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 내용중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자아 경계의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붕괴 이외에 또 어떤 면이 있을까?
잘은 모르겠으나 사랑에 빠지는 현상의 성적 특성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그것은 짝을 구하고자 하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성적 본능의 발로가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랑에 빠진 행위의 특징인 일시적인 자아 경계의 붕괴는
내부의 성적 충동과 외부의 성적 자극의 결합에 대한 인간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이런 반응은 종족 보존을 위해 성적 결합의 가능성을 더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또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말해 사랑에 빠지는 것은,
가만히 두었더라면 분별력을 갖추었을 우리의 정신을
유전인자가 속여 결국은 결혼이라는 덫에 걸리거나 빠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난 책을 읽으며 밑줄친 문장표현이 너무 재미있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 중 한가지인 '사랑'.
뭐라 형언할 수 없이 가슴 두근대는 그 벅찬 감정이
알고보면 꼴랑 <짝을 구하고자 하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성적 본능의 발로>라니...
이런 종류의 생태학적, 진화론적 '사랑에 대한 해석'을 접하면 세상이 좀 재미없게 느껴진다.
난 아직까지는 그래도 '사랑'이란 감정에 대한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함과
세상의 반을 차지하는 '여자'라는 인간종류에 대한 호기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
'아직도 가야할 길'의 저자 모건 스캇펙은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랑을 정의하기를,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의지'라고 했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보다는 의지에서 나온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려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사랑의 느낌이 없어도 사랑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
사랑의 느낌이 있으면 더욱 좋다. 그러나 느낌이 없을 때도 사랑하려는 의지와 헌신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으며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느낌으로 행동하는 것을 억제할 능력이 있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윗 문장을 들여다보면, 무언가 정리되는 듯한 게 있다.
* 가짜 사랑
청춘기에 흔하게 일어나는 사랑하는 감정 = 짝을 구하고자 하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성적 본능의 발로.
* 진짜 사랑 (참사랑)
부부간의 사랑 = 진정한 사랑은 감정보다는 의지에서 나옴 = 사랑의 느낌이 없어도 사랑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
부부간에는 풍파를 겪으며 함께 살아온 세월의 동질감으로 인해,
사랑의 느낌은 안생겨도 사랑하겠다고 결심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보다는 의지에서 나온다'...고 하잖는가?... 그게 바로 참사랑이고...
그러니까... 그 모냐?...
흔히 묻기를, '아직도 남편(아내)를 사랑하세요?...라는 물음에 대부분의 부부들이 웃으며 하는 답변은
'사랑?... 하하하... 그냥 정으로 사는거지...'
여기서의 '정'이란 단어가 나는 사실상 '참사랑'이라고 생각한다.
3.
사랑은...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의지'>
이런 정의를 알면서도 우리에게 만약에 팜므 파탈(옴므 파탈)의 사람이 다가온다면
우리의 이성이 과연 자신의 숫컷(암컷)본능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엔 솔직히 답이 없다.
지금까지 알아왔던 '사랑이란 것은 감정'...이 아니고,
'사랑이란 것은 의지'...라는 정의를 가슴에 새기고 새겨서 습관화 만들고
제 2의 본능으로까지 만들지 않은 다음에야 그게 가능하겠는가?...
한가지 확실한 건...
'사랑을 알면 알수록, 사랑을 하기는 더 어려워진다'는 것.
그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칼리지브란의 '예언자'에서 이런 종류의 구절도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았는데...
<사랑이 다가오면 사랑을 받아들여라...
사랑속에 감춰진 칼날에 베이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을 하라>... 뭐 이런 내용들.
아, 도대체... '사랑' 이 잡것을 어쩌면 좋을까요?...
PS.
감상평이 아니고 '사랑의 정의를 찾아서'가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삼천포로 샐랑말랑 하다가 종국에는 사천으로 빠져버린 느낌. ㅎㅎ...
생각과 결론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그 흔하디 흔해빠진 '사랑'에 대해
부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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