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에 대한 국민의 이미지는 불도저같이 밀어붙이고 뭔가 늘 바지런하게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설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패악질을 까발린다. ⓒ 두 아들 아빠
이명박이 현대건설의 최고 책임자로 있었던 1979년 8월21일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항만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근로자들의 항의 데모 사건을 밝히고자 한다.
현재 노 대통령의 사돈 팔촌까지 거론하는 국내의 모든 언론은 당시에는 침묵으로 일관하여 이 사건에 대한 진상은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에 현대 건설은 해외 근로자에 대한 임금 착취가 극심했다. 인근에 있는 타 회사와 비교하여 형편없는 임금과 근로 조건, 거친 노무 관리에 대한 개선과 요구가 전혀 받아들이지 않자 근로자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사건 당일 점심시간에 형편없는 음식을 보고 그동안 쌓였던 분노가 폭발했다. 직원과 근로자의 식당도 구분하고 음식도 차별을 두었을 뿐 아니라 숨 막히는 더위에 온도마저도 달랐다.
누군가 식판을 주방 안으로 내던지며 항의를 하자 식당에 있었던 모두가 따라 던졌다.
흥분한 근로자들은 식당을 나와 사무실로 뛰어들어서 거칠게 항의를 하였고 관리자들은 이들의 흥분을 진정시키기는커녕 평소대로 고압적으로 대했다. 이에 근로자들은 중장비를 몰고 와서 사무실을 뒤집어엎고 그와 중에 불이 났다.
관리직 직원은 모두 도망을 가고 현장은 근로자들만 남았다.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엄청난 문제를 현장 책임자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본사에 있는 사장 이명박에게 보고를 하고 이에 대한 지시를 받았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근로자들과 협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사우디 당국에 폭동이라며 진압을 요청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왕정국가로써 자국의 근로자들이라도 단체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현대건설 측의 요청을 받은 사우디 당국은 방위군을 즉각 투입했다. 이들은 탱크를 몰고 총을 쏘면서 현장으로 밀고 들어와 한국인 근로자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당시 중동국가에 있는 영사관과 대사관에는 근로자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중앙정보부 직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모자를 색출하여 한국으로 강제 송환을 하였고 이들 중 일부는 국내에 들어와서 사상 검증을 혹독하게 받았다.
사우디는 한국정부에 자국의 모든 건설현장에서 철수를 요구했다. 이에 놀란 박정희 정권은 국무총리인 최규하를 보내서 사죄를 하게 하였다. 그 결과 모든 피해를 보상하고 현대건설은 영원히 사우디 공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최규하가 대통령이 되어서 다시 찾아간 것은 그때의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함과 개인적인 서러움을 풀기 위해서다. 그런데 세계가 모두 아는 허수아비인 그를 대통령 취급을 해주었을까?
조, 중, 동은 이게 한국과 사우디의 첫 번째 정상 회담이라고 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피와 땀을 짜서 오일달러를 엄청나게 벌어들인 박정희 정권은 이 사건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중동의 열사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일 한 근로자를 착취하고 탄압한 이명박을 성공한 CEO라고 하면 안 된다. 그는 정주영과 박정희의 더러운 야합의 궁물을 빨아먹는 자다.
박근혜는 이명박이를 검증하거나 까발릴 수 없다. 왜냐하면 모두 자기 아버지가 걸려있으니까.
이명박이 ‘궁물’이면 박정희는 ‘왕건이’ 다.
이명박이는 불도저가 맞다. 근로자를 밀어 버리는...
(서프라이즈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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