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사회

죽은 자가 산 자를 이길 수는 없다

라즈니쉬 2007. 2. 22. 23:42

무덤에서 돌아온 대통령

김유찬 사태가 얼마만큼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까? 그냥 생채기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유찬의 폭로는 너무 이른감이 있다. 그리고 기자회견 내용을 봐도 명분이 별로다. 개인적 원한과 사욕이 짙게 깔려 있다. 이런 정도면 언 발에 오줌누기다.

조중동이 그것을 재료로 해서 엄청난 가공 신공으로 도배하지 않는 한 김유찬으로 폭로만으로 이명박이던 박근혜를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거지 발에 흙탕물 튀어봐야 거기가 거기듯이 말이다.

김유찬의 폭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자면 조중동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명박이 사생결단의 자세로 대응하고 박근혜가 끝장내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된다. 그런데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조중동은 애써 고개를 돌리고 있고 이명박 측은 배후설이 궁금하다는 둥의 뻔한 소리만 하고 있고 박근혜도 검증 받으라는 공식적인 얘기만 하고 있다.

김유찬의 폭로가 거래를 위한 자발적인 것이든 박근혜의 사주든 이명박의 자해 행위든 간에 절대 그것에 눈을 돌리면 안 된다. 이용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진흙탕에서 자유롭지만 우리들은 그렇지 않다. 흰 것이 더 때 묻어 보이는 법이다.

김유찬의 폭로는 유야무야로 끝날 것이다. 그 대가로 무엇이 주어지던지 말이다. 김유찬 정도의 폭로로 한나라당이 폭삭 주저앉을 정도였으면, 대권 후보들이 물러날 정도였다면 예전에 망했다.

한나라당의 대권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한나라당의 의원들도 아니고, 당원도 아니다. 한나라당은 대권후보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 당 대표는 어찌 어찌 스스로 선택 한다고 해도 대권 후보는 조중동(혹은 조중동을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그들)이 결정한다. 조중동이 부는 나팔에 따라 대권후보는 결정된다.

조중동은 이제까지 ‘노무현 VS 박정희’ 구도로 정국을 만들려고 애써왔다. 참여정부를 늘상 좌파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도 그렇고 아마추어 정부로 규정하는 것도 그렇고 정치실험이라 부르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박정희의 이미 검증된 경제성장론을 내세우는 것이다. 조중동은 이명박과 박근혜 중 누구의 손을 들어 줄까? 김유찬의 폭로로 둘 다 팽해 버릴 까? 이명박과 박근혜 둘 중 누구도 팽할 수는 없다.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는 있어도….

박근혜는 누가 뭐래도 박정희의 적자다. 그리고 육영수의 살아있는 아이콘이다. 박근혜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박정희의 고도성장이란 공로(?) 때문이 아니다. 부모가 모두 총탄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자신을 포함한 누구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않은 것에 기인한 동정심 때문이다. 박근혜는 부모의 피를 먹고 살고 있는 것이다.

고도성장의 휘황한 아이콘은 오히려 이명박 쪽이다. 경부고속도로하면 생각나는 것은 박정희와 정주영과 이명박이다. 박정희와 정주영은 죽었으니 이제 이명박이 유일하다. 그래서 이명박은 경부고속도로의 동의이음인 경부운하를 줄기차게 외치고 다닌다.

박정희의 딱딱한 외모와 육영수의 부드러운 얼굴은 매우 조화롭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여겨오던 엄부자모 그 자체다. 세월이 흘러가면 사람들의 머리에는 이미지만 남는다. 그들이 행한 일은 까마득하고 상징뿐인 이미지만 남는다. 그것을 향수라고 한다.

조중동이 정국을, 대선을 ‘노무현VS박정희’로 끌고가려는 이유가 바로 이명박과 박근혜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인제의 몰락은 박근혜가 없기 때문이었다. 박정희만 강조하면 독재의 어두운 그늘이 떠오를 수 있다. 그것을 덮는 것이 육영수 효과다.

선글라스 쓴 이명박과 한복을 입은 박근혜가 나란히 선다고 생각해보라. 바로 박정희와 육영수 그 자체다. 얼마나 환상적인 커플이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조중동은 누구 하나 버릴 수 없다. 게다가 이명박이든 박근혜든 한 사람만 내세웠을 경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수도 없다. 한나라당이 대선 후보 유고시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중동의 구도는 대통령 이명박과 국무총리 박근혜다. 한명숙 총리가 여자총리로서 무리 없이 끌어가고 있으니 여자 총리는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여자 대통령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무리다. 아직 가부장적 기풍이 살아 있고, 더욱이 한나라당의 체질에 맞지 않는다. 여자 알기를 모두 술집 작부로 알고 있는 그들이 아닌가.

박근혜가 한나라를 살린 일등 공신임에도 박근혜를 완벽히 띄워주지 못하는 것이 여자 대통령이라는 실험을 굳이 할 필요도,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를 결정할 시기가 오면 적당하게 조정이 들어가고 대선 후보 경선은 뻔한 결말로 나타날 것이다.

이명박이 대선을 승리하게 된다면 무덤을 박차고 돌아온 박정희를 보게 되는 것이며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육영수를 보게 될 것이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아무것도 아니다. 조중동이 벌인 초혼굿에 몸뚱이를 빌려준 꼭두각시 일 뿐이다.

조중동은 박정희가 되살아나고, 전두환이 활개를 치는 세상을 보고 싶을 뿐이다. 손학규가 조중동에 버림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영석의 말처럼 한나라당이 정상적으로 집권하려고 할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후보가 손학규다.

조중동은 세상이 정상적으로 흘러가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손학규를 선택할 수가 없다. 그래서 비정상적인 이명박과 박근혜를 선택했다. 온갖 부패와 비리로 똘똘 뭉친 그들을 말이다. 조중동의 바른 세상은 비정상적으로 흘러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죽은 공명은 산 중달을 한 번 달아나게만 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라는 얘기는 삼국지, 정확하게 말해서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작가 나관중이 촉을 정통으로 보았기 때문에 제갈공명을 띄워주기 위한 작가의 배려다.

실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별반 상관없다. 오장원 싸움의 최종 승자는 사마중달이었으니 말이다. 촉을 정통으로 보든 말든 제갈공명은 죽었고 사마중달이 승리했다. 한 번의 싸움을 이겼다고 해서 전쟁에 승리할 수 없다.

최종 깃대를 누가 꼽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조중동은 죽은 공명을 불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죽은 자가 산자를 이길 수는 없다. 죽은 공명은 그저 중달을 한 번 놀래켜 준 것밖에 없다. 그저 쪽 팔리는 해프닝일 뿐이다.

조중동이 ‘노무현VS박정희’ 구도로 몰아가면서 죽은 자를 불러와 무슨 굿판을 벌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죽은 자일뿐이고 죽은 놈 불알 만지기일 뿐이다. 죽은 놈 불알을 아무리 조몰락거려 봐야 제 기능을 할 리가 없다. 그저 좀비의 움직임에 잠시 놀라는 일은 있어도…

박정희의 ‘고도성장’은 이제 죽은 놈의 불알일 뿐이다. 21세기에 맞지도 않고 선진국의 문턱에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저 놈은 죽은 놈이라는 것은 알려주면 된다.

조중동이 주물럭거리는 것이 죽은 놈의 불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주면 된다. 그것을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은 자의 이름을 불러주면 된다. 이명박을 박정희로 인정해주고 박근혜를 육영수로 불러주면 된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는 숨을 크게 쉬고 고함을 지르면 된다.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명확하도록 말이다. 죽은 시체를 선택하는 곳은 저승 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곳이 저승이던가? 조중동이 이명박과 박근혜를 어떻게 써 먹건 간에 죽은 자가 산 자를 절대 이길 수 없다.


ⓒ 술한통회한접시




(서프라이즈 펌)

'정치 *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대통령의 친필메모  (0) 2007.03.23
대한민국의 비전은 동양의 스위스  (0) 2007.03.13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자격  (0) 2007.02.12
이명박의 특기  (0) 2007.02.02
박근혜의 입버릇  (0) 2007.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