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사회

내 노래는 이쑤시개 값 (시사매거진 '음원수입'편)

라즈니쉬 2015. 5. 3. 17:13

 

한 남자가 전단지를 돌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신축빌라 분양을 홍보하는 전단입니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합니다.

[음악밴드 기타리스트]
"식당에서 뚝배기도 닦아봤고, 일식집에서
칼질도 해봤고, 중국집 자장면 배달은 당연히 해봤을 테고."

이 남자의 원래 직업은 음악밴드 기타리스트입니다.

[호플레이 규호]
"한 장에 10원이에요"(한 장에 10원?) 네, 그러니까 천 장 돌려야 만원 버는 거예요." (한 장에 10원이면 음원값보다는 비싼 거 아니에요?) 아...그렇죠.(웃음)

그도 그럴 것이,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규호씨가 소속된 밴드의 노래가 재생될 때 이들에게 돌아오는 돈은, 1원입니다.

"요즘은 이런 CD나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일은 드물죠. 아마 대부분 얼마쯤 이용료를 내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음악을 즐길 겁니다. 우리가 매달 낸 음원이용료, 이른바 노랫값일텐데, 이 돈은 가수와 작곡가, 작사가에게 얼마나 돌아가고 있을까요?"

복고적이면서 이국적인 의상.

독특하다 싶지만 금세 익숙해지는 디스코 선율.

디스코 밴드 술탄오브더디스코의 대표곡 '탱탱볼' 입니다.

결성 8년만에 낸 첫 정규앨범이 다음해 한국대중음악상 후보로 오를 정도로 평단의 인정과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얻었습니다.

세계 최대 페스티벌인 영국 글래스톤베리페스티벌에 공식초청을 받는가 하면, 지난달엔 그래미상을 받은 유명 프로듀서와 함께 싱글 작업도 벌이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탱탱볼 음원 출시 첫 달 음원판매사이트에서 발생한 수입은 100만 원.

이 중 50만 원은 제작사가 가져가고 멤버 다섯명이 남은 50만 원을 각자 10만 원씩 나눠가졌습니다.

[나잠수]
"네, 가장 잘 벌 때요. 한 달에 10만 원이면 그래도 전화기 값을 낼 수 있어요."

일기예보 좋아좋아~~

1990년대 후반 좋아좋아, 인형의꿈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그룹 일기예보 멤버 나들 씨의 음원 수익 내역서를 봤습니다.

5원, 3원, 4원..

심지어 1원도 찍혀있습니다.

총 13만 번이나 곡이 팔렸는데, 수입은 30여만 원입니다.

[일기예보 나들]
"어떤 노래는 3원, 5원, 4원 한 29번 들으면 86원 이렇게 들어와요."

대체 음원값은 어떻게 계산되기에 이 지경일까?

요즘 대중음악은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로 듣는 게 보편화되면서 주로 파일 형태로 판매됩니다.

멜론이나 지니뮤직, 네이버뮤직 등이 이런 음원 파일을 공급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음원 자체를 구매하는 다운로드보다는 월 이용료 6천 원만 내면 원하는 곡을 실시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서비스가 대체적인 이용형태입니다.

보통 1000곡을 듣는다고 가정하는데, 곡 하나에 6원으로 칩니다.

여기에 40%, 즉 2.4원은 멜론 등 음원판매사이트가 가져가고, 60%인 3.6원이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데, 제작자 44%, 작곡, 작사가가 각각 5%, 가수, 연주자가 6%를 나눠갖습니다.

가수에게 최종 돌아오는 액수가 0.36원이란 소립니다.

[윤일상]
"커피 한 잔 값이죠. 커피 한 잔 값으로 무제한 스트리밍을 들을 수 있고, 실제적으로 창작자들이나 저작권 인접권자들, 실연자들에게 돌아가는 건 많지가 않죠."

반면 국내 최대 음원 판매사이트 운영업체의 작년 매출은 3200억 원, 순이익은 450억 원에 달합니다.

외국과 비교해봐도 국내 음원값은 굉장히 낮은 수준입니다.

애플의 음원판매사이트 아이튠즈에서 곡 하나를 다운받으면 0.99달러.

우리 돈 1,100원입니다.

우리처럼 반값 할인 정책을 쓰지도,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지도 않습니다.

또, 음악생산자가 60%만 가져가는 국내와 달리 아이튠즈는 70%를 돌려줍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국에선 음원 수입이 6천5백만 원에 그친 반면, 해외에선 그 43배인 28억에 달한 게 그런 이유입니다.

[윤일상]
"음반시장이 쇠퇴하고 음원시장이 열리고 거기에 따른 합리적인 법체계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유통사가 주도하는 유통시장이 넘어오다보니까 세계적인 그 기준으로 보자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음원 값은 왜 이렇게 싼 걸까.

전문가들은 애초에 멜론이나 지니뮤직 등 음원판매사이트가 SKT나 KT 등 이동통신사의 벨소리 제공같은 부가서비스로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음원사업 자체가 음악을 위한 게 아니라 이동통신사 마케팅 수단이었다는 겁니다.

[신대철]
" 저가의 상품권을 팔아서 음악을 듣게끔 만들어진 건데, 음악을 위해서 존재하는 플랫폼은 없는 거죠."

최근에 큰 논란을 빚었던 삼성의 밀크뮤직 페이스북 광고.

'넌 아직 돈내고 노래 듣니? ' 등, 노랫값을 지불하는 것을 조롱하는 듯한 글귀들로 가득합니다.

노랫값은 삼성이 가수들에게 대신 내줄 테니 공짜로 듣고 자사 스마트폰을 애용해달라는 겁니다.

[밀크뮤직 관계자]
"결국엔 저희는 폰을 파는 업체니까. 이익을 낸다거나 수익구조나 그런 거하고는 거리감이 있죠."

"소비자 입장에선 적은 돈으로 음악을 즐기는 게 나쁜 건 아니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작자보다는 통신사, 전자회사가 주축이 된 지금의 음악산업, 균형을 잃은 듯해 보이는 분배구조를 생각해보면 단순하게
넘길 일 만은 아닙니다."

가사 그대로, 홍대 인디밴드들에게 그야말로 울고 싶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뮤지션과 음원사이트를 이어주는 음원유통 대행사 한 곳이 3백팀이 넘는 인디뮤지션들의 음원수입과 이들의 음원을 담보로 받은 투자금 5억여원을 들고 잠적해버린 겁니다.

[이동준(호플레이 드러머)]
"진짜 벼룩의 간을 빼먹냐, 이런 생각이 들죠. 서로 다 알잖아요. 동종업계 종사자들끼리."

전단지를 돌리던 규호 씨도, 음악생활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낸 앨범수입을 한 푼도 못받게 됐습니다.

[규호]
"정말 히트가 되든 안 되든 정말로 밤잠을 새면서 쓴 곡도 있고, 몇날 며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속앓이를 하다 나온 곡도 있고 그런데 그걸 가지고 자기의 어떤 개인적인 영리를 위해서.."

이런 문제는 그야말로 인디밴드 등 배고픈 음악인들만의 것일까.

2580은 1985년 그룹 부활을 만들어 우리나라 대표적인 록그룹으로 키워낸 김태원 씨를 만났습니다.

네버엔딩 스토리, 사랑할수록, 마지막 콘서트 등 숱한 히트곡을 작곡하고 연주해온 김태원 씨.

그만하면 꽤 많은 돈을 벌지 않았을까.

음원수입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김태원]
"그건 뭐 글쎄요..몇만원의 개념 아닐까요? 그것은 별 개념이 크지 않은데"
(그럼 김태원씨한테 들어오는 것도 몇만원 수준?)
"그렇다고 봐야될 걸요? 몇십만 수준일걸요. 아마? "

순수 음원수입으론 그룹을 유지하기 버거워서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시작했다며, 자신의 이런 활동은 후배들에겐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김태원]
"예능을 통해 콘서트에 관객을 모으고 그러면서 그룹을 계속 유지하는...계속 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30년을 온 형태거든요. 한치 앞도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을 겪으면서 30년을 온거죠. 그런데 후배들한테 귀감이 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아요. 제가.."

더 큰 걱정은, 시장만 남고 음악은 뒷전에 밀린, 그래서 음악의 다양성이 고사해버릴 것만 같은 지금의 분위기입니다.

[김태원]
"원 뿌리가, 창작자가 그 곡을 쓰지 않았으면 이 모든 이야기는 없어지는 겁니다. 그들이 노력하는 만큼 그 대가가 치러지지 않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나 문화를 하는 사람들이 에너지를 잃게 되고 에너지를 잃게되면 그 문화는 발전이 없는 거고."

한류 열풍에 거대 연예기획사의 소식이 신문 경제면에도 수시로 등장할 정도로 화려해보이는 대중음악계지만, 실상은 속 빈 강정이라는 데 대부분의 음악인들은 동의하고 있습니다.

[윤일상]
"지금 녹음실 같은 경우도 한 반 이상 없어졌거든요. 연주자분들도 교육쪽으로 많이 가시고, 엔지니어 분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작곡자분들도 마찬가지고, 편곡자들도 마찬가지고 현재..떠나죠. 왜? 살 수가 없으니까."

음원 수입으론 생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볼거리를 제공하는 아이돌 중심의 음악만 성행하고, 다른 장르의 음악은 설 자리를 찾기 힘들어졌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신대철]
"서태지 씨도 90년대 출현한 아이콘이었고 김건모 씨, 신승훈 씨 등 수많은 가요분야에서 굉장히 여러 장르, 신선한 어떤 그런 가수들이 많이 나왔었고, 그렇게 풍성하다가 지금은 아이돌 밖에 없잖아요."

더이상 대기업 음원사이트에 끌려다닐 수 없다며 한 중소 음악제작사는 아예 별도의 음원판매 앱을 만들었습니다.

가수 누구나 자유롭게 곡을 등록할 수 있고, 음원판매액 90%가 음악인들에게 돌아갑니다.

음원은 스트리밍이 아닌 파일을 다운로드 하는 형태로 공급합니다.

가수들의 반응은 폭발적.

소비자들이 얼마나 호응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박준석 플럭서스]
"일회용 재화상품이 아니고 음악을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앨범 단위로 들어야 온전하게 감상이 되고 온전하게 감성을 전달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도 음원판매사업자와 음악인, 소비자들과 함께 합리적인 음원값과 분배율 개선안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대기업이 장악한 음원시장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진 미지숩니다.

무심코 클릭하는 노래 파일의 뒷면에 숨겨진 이야기.

예술은 원래 배고픈 거라고, 또 그들끼리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쉽게 말할수 만은 없는 이유는, 소비자인 우리 역시 문화와 산업을 지탱하는 한 축이기 때문입니다.

[남궁연]
"고흐가 그림이 생전에 팔렸으면 더 많은 작품을 봤겠죠. 저는 그 비유를 항상 하고 싶어요. 고흐에게 만약 좋은 유통경로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었을까."

우리 사회가 대중음악을 즐기고 소비하는만큼 음악인들이 흘린 땀의 무게와 가치를 공정하게 대우하는지 돌아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