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풍경

무슨 큰 일이 있겠는가?...

라즈니쉬 2010. 9. 2. 02:36



고구마를 사러 농수산물 시장을 향한다.
버스를 타고 조금 가다보니 목적지와는 거꾸로 간다.
지금 내린다고 해도 여기서 다시 목적지로 향하긴 쉽지않다.
안가본 노선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냥 앉아있는다.
오늘 고구마를 안산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 있겠는가?...

서울광장을 지나치는데 텐트를 여러개 쳐놓고 장터가 열려있다.
고구마는 이미 목적이 아니니, 알지못할 이끌림에 버스를 내린다.
경북영양 고추장터... 돌아보다 야콘과 배즙을 한잔씩 시음하고.
안사도 괜찮지만 사놓아도 좋을 태양초 고춧가루와 민들레 장아찌를 산다.
오늘 이것들을 구입한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있겠는가?...

우산도 없는데 비가 흩뿌리기 시작한다.
비를 잠시 피할 요량으로 광화문 교보문고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교보문고에서 머물다 책 한권을 집어들어 계산을 마치고.
다시 나오니 비는 그쳤는데, 버스를 어디서 타야할지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있겠는가?...

지하철을 타고 동네부근에 도착후 지하철역을 빠져나온다.
흐린 날씨탓에 역사와 연결된 커피전문점의 향이 짙게 퍼진다.
그다지 더운날씨는 아니지만 커피 한잔하며 피부의 끈적함을 날리고 싶다. 
카운터앞에 서니 '고구마라떼' 팝광고 칼라글씨가 눈앞에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메리카노' 대신에 '고구마라떼'!...  무슨 큰 일이 있겠는가?...

집을 나서서 버스를 거꾸로 탄 것.
서울광장 장터에서 버스를 내린 것.
교보문고에서 책을 집어든 것.
커피대신에 고구마라떼를 주문한 것.
손에 든 책 제목처럼 오늘의 내 운명이었을까?... 

인생은!...
한순간의 착오로 인해 전혀 예기치못한 길로 들어서기도 하지만,
길을 돌아나오기보다는 호기심과 고집과 희망으로 계속 가보기도 하는 것.
때로는 고구마를 사러 나섰다가, 고구마라떼를 먹고 돌아오기도 하는 것.
삶의 목적지는 죽음인데, 오늘 고구마를 못샀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있겠는가?...

고구마를 안먹어서 똥을 못싼다면... 그것이 큰일이라면 큰일이지.

PS.
평소에 좀 멍청한 사람은, 황당한 일 앞에서도 여간해서는 당황하지 않는다.
처음엔 황당함을 잠시 느껴도, 평소처럼 멍~한 상태를 잠시 유지하다보면,
'어?... 으음!... 그저... 그렇구나... 그럴수도... 있겠구나... 그럼 그러지 뭐!'... 하고,
타인, 사건, 또는 자신에 대해 이해하게 되거나 수긍하는 마음상태가 되는거다.
결국 무슨 말이냐면!... 내가 '한 멍청' 한다는 소리며, 그것이 내 장점일수도 있단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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