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위한 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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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게 죄가 있다면, 너무 순진하고 권모술수를 사용할 줄 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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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 저널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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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위한 변명
신문 특히 소위 조중동이라고 일컬어지는 신문의 독자 의견 난을 보면 노무현 비난 전용이라는 메뉴 제목을 붙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신문이 아니드래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 보수 언론은 노무현 한사람을 비난하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노무현을 비난하기 위해서라면 신문의 생명인 정론추구도 헌신짝 처럼 버리고 있다.
그때 그 때 물고 늘어지는 잇슈가 다르지만 잇슈가 문제가 아니라 노무현을 비난하기 위해서 모든 종류의 사안을 다 거기에 동원하고 있고 전혀 관련이 없는 문제도 노무현과 결부 시켜 노 무현을 비난하고 있다. 심한 경우는 한 사람이 하루에 수십 건을 대통령을 비난하는 일로 신문 의견 난을 도배하고 있다.
노 무현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어느 특정한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학자, 교수, 언론인, 예술인, 종교인, 그리고 이런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들까지 아주 광범위하다. 대선 주자라는 사람들도 노무현 비난은 단골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노 무현이 잘하면 그러겠느냐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책임은 노 무현이 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가. 과연 노 무현을 비난하는 이런 기류가 노무현의 잘못에서 출발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노 무현을 비난하는 우리사회의 현상은 그 이유를 노 무현에게서 찾는 것은 우리 사회의 속성 곧 정서, 철학, 관습, 문화를 이해 못하는데서 온 진단이다.
물론 여러 경우에 노 무현이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빌미 이전에 우리사화가 안고 있는 심각한 정신사회의 결함이 있다.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물리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택해서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많은 장소에서도 사람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 자리를 꼭 찾아 앉는다.
한마디로 노무현은 우리 사회의 속성에 맞지 않고 특히 주류들의 입맛에 맞지 않은 인물이다. 우리 사회의 주류들은 감추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떳떳지 못한 사람들이다. 당당하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부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청렴도가 말해주고 있다.
이미 국제투명성 기구에서는 대한민국의 투명성에 대해서는 OECD 국가에선 최하위이며 국가의 체제 기강이 서 있지 않은 아프리카의 열악한 나라들의 가운데 끼여 있다. 성경에 요한복음에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하였다.
노 무현이 추구하는 정책은 대북관계에서만 통용되는 햇빛 정책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합리적이고 이성이 지배하는 정직한 민주주의 사회로 가자는 의미의 햇볕 정책이다.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은 이 햇볕 정책이 싫다. 죽도록 싫은 것이다. 정치 경세 사회 문화 교육 어떤 부류도 노무현이 추구하는 사회를 싫어하며 종교계도 마찬가지이다.
코펜하겐 중앙역의 뒷문 주변에는 알콜중독자 마약중독자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의 집합장소다. 그 주변에 중국 상점 등 동양인들이 즐기는 식품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어 한국 식품 상점이 없는 덴마크에서 한국인들도 그 상점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중앙역에서 그 상점들이 있는 길로 나갈 때마다 그 입구에 모여 있는 그 사람들을 보면 혐오감이 들어서 그 통로로 지나가는 일반인들은 그들을 피해가면서 불쾌해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모여 있던 사람들이 다 떠나고 그 통로가 깨끗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떠났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장소를 옮겼을 뿐이다. 그 이유를 이렇다. 그 통로에 성능이 좋은 스피커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세계적인 명곡을 틀어주고 있다. 대부분 오케스트라 연주 음악을 틀어주고 있는데 그 곳들은 환상적인 음악들이다.
그 곳을 점령하고 죽치고 있던 자들은 그 아름다운 명곡이 싫은 것이다. 우리 사회는 노무현이 틀어대는 명곡이 싫은 것이다. 우리나라 부자는 다 부동산 부자들이다 의사나 약사나 변호사나 세무사나 고소득자들은 100 % 투기꾼들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대부분 부동산 부자들이다. 잘 나가는 언론인들 다 부동산 부자들이다.
그들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부동산을 잡겠다는 노무현 좋아할 리가 없다. 부동산 폭등하는데 돈 버는 사람들도 싫어하고 돈 없는 서민은 집을 살 수 없으니 노무현 또 싫다. 부동산 중과세를 하자고 하면 한나라 당은 목숨을 바쳐서 반대를 하고 있으면서 부동산 대란책임은 다 노무현이 책임이라고 몰아부친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명곡을 이해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은 사람들은 명곡을 싫어하며 우리사회는 노 무현이 틀어대는 음악도 싫고 따라서 노 무현도 싫은 것이다. 우리 사회의 노 무현에 대한 비난이 바로 병들은 정신 사회에 메몰 된 인간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은 취임 초부터 순수 민주주의를 주창했다. 권력기관도 다 손에서 놓아버렸다. 북한에 대해서는 평화를 주문하고 동포애로서 동반성장의 멧세지를 보냈다. 지역감정의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 권력의 전부까지 내어 놓겠다고 했다. 임기까지 단축할 수 있다고 했다.
세계 정치 역사에 권력자가, 최고 통수권자자가 자신의 퇴진을 걸고 이런 제안을 하는 경우를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스스로를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기독교 안에서 보수는 개혁과 뜻이 같이 가는 말이다.
보수는 본래의 뜻을 지킨다는 말이며 개혁은 순수한 뜻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의미이다. 그런데도 안타깝게 우리나라 교회들은 보수라는 이름을 좋아하면서 개혁파라고 하는 노무현 정권에 대하여 비토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현 정권이 사회주의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정말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 유럽은 전체가 상종 못할 나라들이다. 영국 노동당 독일 사회당 북구 사회당 유럽 각국들이 대부분 사회당들이 집권하고 있다. 진정으로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정치적 색깔은 양육강식의 자본주의 보다는 복지 제도로 사회안전망을 갖고 있는 사회주의가 맞다.
종교계가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있다. 대한민국 종교계는 극히 일부 정말로 극세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마디로 썩었다. 가난한 자들의 이웃도 아니며 부동산 투기자들의 이웃쯤 된다.
대한민국에 노 무현만한 대통령을 이제 영원히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 갈등이 없고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국가를 만들어 보려는 대통령을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음해하고 비난하고 끌어내리는 이런 시류는 우리사회가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국민소득만 올라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못가지고 못 배운 사람이라도 차별받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국민 된 자긍심을 누리며 살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노숙자들이 들끓고 끊임없는 극악 범죄가 극성을 부리고 하루에 30 여 명씩 자살을 해 대고 부정과 부패가 꼬리를 물고 지역감정을 이용해서 선동하고 갈등을 조장하고 정치인들은 민생은 외면하고 정치 투쟁을 날을 새우고 이런 사회로는 선진국 요원하다.
노무현의 시대는 우리나라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치유할 수 있는 영영 다시오지 않을지 모르는 기회였다. 노 무현이 성공한다면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분에서 올인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온 국민이 합심으로 그것을 무산 시키고 이제는 그 책임을 노무현 한사람에게 돌리고 있다. 연전 연패의 선거결과인 40 대 0 은 노무현을 싫어하는 우리나라의 속성의 증거이다.
노무현에게 죄가 있다면 그는 너무 순진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권모술수를 사용할 줄 모른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 국민은 노무현의 실패에 가슴아파해야 하지만 우리 국민은 다 깨끗하고 노 무현만 깨끗하지 않다고 돌을 던지고 있다. 너희중 죄 없는 자가 노무현에게 돌을 던져라 하면 우리나라에 노무현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 사회를 보면 답답하고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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