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40대 중년남자에 관하여

라즈니쉬 2006. 10. 3. 13:22

* 정신과 의사가 본 40대 중년남자


40대는 유혹의 시기


인생 40은 불혹(不惑)이라는 말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이 말은 오랜 세월 40대의 대명사로 인지돼 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공자의 이 말은 전혀 틀린 것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40∼45세 남자들의 80%가 이 시기에 심리적 위기를 경험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40대는 불혹(不惑)이 아닌 유혹(有惑)의 시기라고 해야 한다.

칼 융(C.G. Jung)이라는 정신분석가는 40세 전후가 인간의 행동과 의식이
탈바꿈(reversal)하는 결정적인 전환기임을 밝혀냈다.
융은 이때 비로소 인생에 대한 진정한 ‘눈뜸’이 일어난다고 했다.
중년은 ‘인생의 절정’이자 인생의 태양이 머리 한가운데에 떠 있는
‘인생의 정오(the noon of life)’라는 것이다.

그러나 40대가 인생의 절정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흔들림’이다. 학자들은 “중년기는 외면적으로는 별 문제없이 균형잡힌 듯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분노, 속은 듯한 느낌, 탐욕 같은 유치한 감정을 지니는 시기다.
바람직한 생활과 미소 뒤에 숨은 미성숙한 탐욕과 유치한 야망과 같은 양면성으로
40대 남자들은 갈등에 빠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40대의 많은 남자들은 흔들리는 자기 자신을 보며 ‘40은 불혹이라는데
나는 왜 이렇게 철없이 흔들리는 걸까’ 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자책한다

40대 한국 남자들의 특징으로 98년에 출간된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 자료를 보면

각 연령대의 특징을 나타내는 몇 가지 키워드가 수록돼 있다.
벗어나려는 10대(탈출 욕구), 즐기려는 20대(재미 욕구), 더불어 살아가려는 30대(공동체의식),
외로운 50대(외로움)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40대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바로 ‘피곤한 40대’다.
40대는 20대처럼 즐거운 시간을 갖고자 몸부림치지도 않으며 30대처럼 사회불만을 토로할 힘도 없다.
일회용 위장약 복용률이 어느 연령대보다 높고, 노후보장보험에 80%가 가입해 있을 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편견과 아집의 고착화’다.
확실히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말이 많아지고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사오정식 동문서답을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뿐 아니다. 스스로 터득한 몇 개의 삶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칙들을 일반화하여
타인에게 강요하는 무리수조차 서슴지 않는다.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장점을 강조하고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나쁜 것이라고 폄하기 시작한다.
마음을 편케 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의 일종인 것이다.
중년은 이렇게 자기 정당화, 자기 합리화가 두드러지는 시기다.
어떻게든 자신이 경험했거나 받아들였던 상황들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부정하게 되면 그 시간 속에 들어 있던 자신의 존재 근거 자체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40대 남자들이 편견이나 아집 등에 집착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바로 이런 것이다.

또한 40대 남자들에게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감성화 경향’이다
졸리기만했던 클래식의 선율에 귀가 뜨이고 서점에 가도
늘 경제 재테크 서적이나 직장인의 성공처세술을 다룬 책에만 관심을 기울이던 그가
시에 끌리기 시작한 것은 아주 우연한 일 때문만은 아니다.

‘방금 운명이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라는 시구처럼 시가 운명처럼 그의 앞을 지나갔다.
‘내가 왜 그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를 몰랐을까’ 하고 뼈에 사무치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런모습을 보는 아내들은 “문학청년 하나 났네” 하며 약간은 비아냥거린다.
아내의 그런 태도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하고 우울하게 한다

늘 바깥일에만 신경을 집중한 채 전투적인 삶을 살아가던 남자가,
어느날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또 남자들은 이때 의존성이 늘어나고 따뜻하고 섬세한 감정이 되살아난다.
갑자기 아이들에게 깊은 애정이 생기며 아이의 생활에도 관심이 생긴다.

그런데 왜 40대 남자들은 이런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일까.
남자들은 30대 초반까지는 교육을 받고 직업을 선택하여 실생활의 기반을 다지고 결혼하는 등
삶의 외형적인 틀을 갖추는 준비에 모든 에너지를 투입한다.
그 결과 삶의 외형이 어느 정도 잡힌 사람들은 앞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지 몰라
방향을 잃고 정신적인 공황 에 빠지게 된다.
이때 남자들은 일 중심의 가치관을 넘어서 자유로운 내면적 자아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중년의 변화는 심리적· 생물학적으로도 입증된다.
원래 남성의 몸 속에는 다량의 남성호르몬과 아주 소량의 여성호르몬이 있고, 여성은 그 반대다.
그런데 묘하게도 30대 중반이 지나면서부터 남자에게는 남성 호르몬이 감소하고
여성호르몬이 증가하게 된다.
반대로 여자들은 여성호르몬이 감소하고 남성호르몬이 증가한다.

그 결과 여자는 점점 독립적이고 주도적이게 되며 남자는 예민하고 감성적이게 된다.
그런데 여자들이 독립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누구나 긍정적인 발전으로 간주하지만,
남자들이 감성적으로 변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우선 스스로가 자신의 그런 변화를 ‘약해진’ 증거로 보고 감추려고만 한다.
또 아내는 안정된 가정을 이룬 남편이 지금에 와서 흔들리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 인생에서 40대를 정점으로 이루어지는 감성적인 변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외형적이고 객관적인 삶에 치우친 그들의 삶에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늘어나면서
한 인간의 삶이 균형을 잡아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남자들의 외도가 많아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40대 남자들의 감성화와 관련이 깊다.

TV를 보고 있는데 드라마에서 남녀가 불륜의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가 농담처럼 아내에게 물었다. “나한테 애인이 생기면 어떡할래?”
남편의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듯이 0.5초 만에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 아내의 대답.
“배 나오고 나이 들고 돈도 없는 당신같은 남자를 누가 좋아하기나 한대?”
그는 아내에게 살의를 느낄 만큼 심한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누군가와 밤새워 얘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고백하는 40대 남성이 의외로 많다.
들끓는 성욕을 못 이겨 젊은 여자나 찾는 중년의 찝찝함 정도로 매도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것이다.

자신에게 철이 없다거나 어린애 같다고 비난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공감하며 얘기를 들어줄 상대를 갈구하는 것이다.
감정 표현이 열등한 남자들은 40대들은 그 시기를 전후해 ‘갑자기’ 찾아온
정서적이고 부드러운 감성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지 말아야 할 장소에서 느닷없이 성기가 발기될 때처럼 당혹감에 휩싸인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남자들은 감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인지 등을
제대로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문화권에서든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자 몫이다.
엄마든, 유모든, 집단탁아소의 보모든 대부분이 여자다.
그래서 아이들은 생의 초기에 자기를 돌봐주는 여성의 특징(부드럽고 감성적이고 포용적인 면)을
내면화하면서 심리적으로 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여자아이들은 그런 여성성의 특징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성장할 수 있지만
남자아이들은 서너 살부터 생각하지도 못한 도전에 직면한다.

지금까지 체득해왔던 여성의 특징들을 다 부정해야만 남자로 대우하겠다는
거대한 사회적 압력에 맞닥뜨린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들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남성다움에 대한 강박관념’,
즉 ‘맨 콤플렉스’의 작동이 그것이다.
이때부터 ‘제대로 된’ 남자가 되기 위해서 사내아이들은 적극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절제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남자들의 감정기능이 퇴화할수 밖에 없는 후천적 이유다.

그러나 선천적·후천적으로 감정기능이 열등한 남자들은 역으로 40대에 찾아오는 감성을
성장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그것은 처음 자전거 배우기에 비유할 수 있다.
초보가 자전거를 배울 때 넘어지려고 하면 반사적으로 핸들을 반대쪽으로 꺾게 된다.
그럴 때마다 귀가 따갑게 듣는 것이 넘어지려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만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순된 말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야 넘어지지 않는다.

40대에 감정의 흔들림을 겪는 남자들에게도 이러한 교훈은 요긴하다.
감정 쪽으로 기우는 마음을 억지로 이성 쪽으로 돌리려다 보면 넘어져서
상처만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40대는 ‘마음의 자전거 타기’를 익혀야 하는 시기다.
중년에 새로운 변화와 흔들림을 느끼는 것은 죄도 수치도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인생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나이인 것이다.

우리의 삶을 조망해보면, 남자의 40대는 대단히 의미있는 ‘인생의 위기’라 할 만하다.
그 고비를 제대로 넘기지 못해 심리적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는 사람도 있고
행복한 인생을 위한 기회로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 ‘제2의 사춘기’라고도 불리는 40대에
정신적 격동을 기회로 승화하느냐는 그건 온전히 각자의 몫일 것이다.

(다음 미즈넷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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