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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물길 열리다

라즈니쉬 2005. 10. 7. 18:24
(0)

어제 밤 10시 KBS 환경스페셜 <청계천, 물길 열리다>를 봤다.

보고 난 후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도심 속 물길을 연 청계천 복원의 근본 취지는 옳았다.

인간과 환경을 생각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환경을 우선하자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끈기있게 참았을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청계천 구조물과 복원방식은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오히려 우리와 후손들에게 큰 숙제만을 남겨주었다.


외국의 사례는 우리의 복원방식이 너무나 허술함을 증명한다.

어디 가서 '우리는 이런 식으로 복원했소'라는 말을 꺼내기가 힘들다.


(1)

청계천을 걷어내기 시작한것이 2003년 7월1일. 완공 2005년 10월 1일.

공사기간 2년 3개월. 준비기간을 포함하더라도 3년이 안된다.


이에 반해 자연으로 되돌려 놓기 위한 외국의 사례는 절절하다.

그들의 치밀하고 진득한 노력의 자세는 우리와 왜 이렇게 딴판인가.

왜 우리는 이런 수준밖에 안되는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겉만 번지르르한 건 아닌가.


이웃 일본의 키타큐슈 바찌 천의 사례를 보여준다.

초기시작 1996년. 시민들의 참여와 합의 속에 준비만 6년.

2002년부터 시작된 공사는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2007년이 목표라니 10여년이 훌쩍이다.


10년 이상 걸린 다른 나라의 사례에 비해 청계천은 사상유래 없는 최단시일이다.

복원방식, 완성된 구조물, 시민과의 행정교감 등 문제거리는 끝도 없다.

인접지역의 토지이용과의 연계, 생태계의 축으로 기대, 주민들의 합의와 대화를 통한 통합적인 진행방법 등 설계초기부터 시민단체나 환경학자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된 문제 등은 상당부분 적용되지 않았다.


(2)

완공된 청계천은 상류천의 원류와 지류천에서 흘러드는 본래의 모습이 없어졌다.

상류천, 지류천 그리고 청계천 본천은 단절됐다.

청계천은 단지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 광장부터 시작이다.

오로지 인공 그 자체다.


하루12만톤. 5톤짜리 물차 2만4천대분의 물을 매일 공급해야 한다.

이 물은 대부분 한강에서 퍼올린 것이다.


인위적 에너지를 이용해 인공펌핑으로 퍼올려 뿜어내는 방식이다.

땅속을 스며들고 흡수되면서 자연적으로 정화되어 흘러드는 물이 아니다.

한강물을 퍼올려 침전시키고 소독을 시켜 광화문으로 보낸다고 관계자는 말한다.


환경을 생각하여 만들었다고 하지만, 광화문 앞을 유유히 흐르는 그 이면에는 반환경적인 인위적 에너지가 동원되고 있다. 지금 이 방식에서 변함없다면 청계천은 천년만년 모터펌프를 돌려야 한다.


(3)

청계천의 시발점 중 한곳인 상류천인 옥인동 백운동천을 가본다.

맑은 물에서만 사는 가재가 놀고 있다. 인왕산 바위산을 통해 내려오는 맑디맑은 물이다. 그러나 이곳 계곡에서 쏟아지는 깨끗한 물은 전부 하수관거로 들어가 청계천과는 단절된다.


지류인 정릉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위로 버들치가 보일만큼 맑은 물이다.

하지만 정릉천을 포함해 대부분의 지천들은 청계천과 끊어져 단절된다.


상류천과 지류천등을 복원하고 연계시키려면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자연과 합치된 청계천으로 제대로 복원하려면 당연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다못해 주변 문화재를 제대로 복원하려해도 마찬가지다.

 

▲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4)

청계천 하류 한강쪽에는 피라미들이 치어를 낳고 살고 있다. 이번에 복원된 청계천 상류쪽에도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물속에 카메라를 집어넣는다. 그러나 급한 물살만 흐를 뿐 치어들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물고기가 살 수 있는 구조가 전혀 아니다.


이번에 완성된 청계천은 여울과 소가 부족하고 도로를 따라 길게 뻗은 시멘트로 둘러쌓인 직강구조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복원된 5.84Km 구간 중 직강하천은 무려 70%에 이른다. 주변은 조형을 통해 마치 자연하천처럼 꾸며놓았음을 관계자는 설명한다.


인공하천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하천의 직선화는 하천생명들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물고기 입장에서는 여울과 싸워야 하고 피난처가 없어지며 치어를 낳고 살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수도꼭지처럼 뿜어주는 시발점인 광화문 상류쪽 유속은 상당히 빠르다.

바닥에는 자연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차수막. 즉 방수막을 깔아놨다.

물이 땅속으로 흡수되면 안 되고 일정높이의 물 흐름을 보여줘야 한다.


(5)

보통 일반적인 자연하천의 모습은 상류에서 하류로 갈수록 혼탁이 심해진다.

상류는 맑고 중류는 조금 혼탁, 하류에 가면 많이 혼탁해진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지금 복원된 청계천의 경우는 거꾸로 뒤집혀져 있다.


상류에서 혼탁하다가 중류에 오면 조금 맑아지고, 오히려 중량천과 합수되는 하류지역에 가면 맑아지는 현상을 어류군 채집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한강물을 퍼올려 상류로부터 유입시키는 결과다.

지금 상류쪽 겉모습은 하천의 상류모습을 갖췄지만 그 속을 흐르고 있는 물은 하류보다 혼탁한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6)

비가 오면 빗물은 저지대로 모이고 주변의 오폐수와 함께 청계천으로 흘러든다. 청계천으로 흘러든 오폐수는 물고기들에게도 위험이다. 청계천의 범람과 그로인한 생태계 파괴가 그것이다.


지난 여름 집중호우로 청계천 물이 불어나면서 복원공사 중이던 차량이 순식간에 휩쓸리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청계천 주변지역 80%는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아스팔트로 뒤덮여 빗물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다. 주변지역의 물은 온통 청계천으로 쓸려내려갈 공산이 크다. 집중호우에 대비해 마련한 하수관거는 미흡해 보인다.


이에 대해 독일의 빗물관리 시스템은 교훈이다. 옥상지붕까지 경사지게 만들어 빗물을 모은 후 수초가 심어진 연못으로 보내 자연정화를 시킨다. 비가 많이 올 경우 연못의 수위가 높아져 들판으로 흐르고 그렇지 않을 경우 대부분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하천의 수자원이 되게끔 만드는 친환경적인 시스템이다.


(7)

2년 3개월 만에 후다닥 해치울만한 성질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장시간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은 지자체장의 생각일까. 평생을 건설업에 종사한 직업적 특성이 있는 것일까, 일단 보여주기 위한 완공물에 집착하는 것은 그동안 여러 행적이 증명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전시행정의 극치라는 표현을 자주한다.


만약 서울시장의 임기가 10년이었다면 어땠을까. 장기집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시간을 두고 지금보다는 더 찬찬히 꼼꼼하게 행하면서 임기말에 완성시킬 수 있도록 조절하지 않았을까라는 우스운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8)

환경을 생각하며 시작한 청계천 복원은 도심 한가운데 물길을 열어놓았다.

삭막한 도시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물길이 열렸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완성된 결과물과 완성하기까지 방식은 본래의 취지와 원형이 많이 훼손됐다. 지금의 청계천 구조와 복원방식은 정말 개운치 않은 숙제만을 떠 안겨버렸다.


10월 1일은 완성된 날이 아니라 미완성의 구조물로 완성시킨 날이 되어 버렸다.

방송은 10월 1일 청계천 복원이 끝난게 아님을 결론짓는다.

오히려 이제부터 청계천 복원의 시작임을 강조하며 방송은 끝맺는다.


(9)

3년도 안 되는 초스피드로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시스템관리가 부족한 채 후다닥 해치웠다. 겉보기에 물만 흐른다고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더 큰 문제를 잉태했다.


지금 만들어 놓은 청계천은 우리와 후손들에게 심각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마치 물 흐르는 셋트장처럼 만들어 놓은 청계천을 어떻게 하면 자연에 흐름에 순응하는 본래의 청계천으로 되돌려 놓을 것인가. 하천 복원의 표준으로 삼을만한 사례로 되살려 놓을 방법은 없을 것인가.


(10)

단기주의, 성과주의, 조급증, 부하뇌동은 금물이다.

진정성이 엿보이지 않는 결과물은 해놓고도 찜찜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위해 먼 미래와 장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자세는 곤란하다. 행정주의 독단과 과시욕은 이번 청계천 개발이 제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춘추관 

(서프라이즈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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