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문서의 기본, 폰트의 재발견
폰트는 단순히 문서를 구성하는 요소에 머물지 않는다. 폰트는 문서의 성격을 한눈을 드러내주고 문서를 만든 사람의 능력과 체취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물론 잘 사용한 폰트는 문서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문서의 외관을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겸한다. 우선 폰트를 잘 쓰기 위한 기본 상식부터 짚어보자.
폰트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현대 사회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말보다 문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업무 추진을 위한 기안서, 업무 추진 과정을 정리한 업무 보고서, 다른 회사와의 제휴를 위한 제안서, 회계 자료를 담은 각종 재무제표 등 문서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직장인은 문서를 작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문서에는 작성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작성자의 인격이 묻어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샐러리맨이 외모를 단정히 하고 고객을 만나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담은 문서를 깔끔하고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은 비즈니스맨의 기본에 속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듯이 읽는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는 물론 정성까지 담았다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렇다면 보기 좋은 문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에 깔끔한 문서를 만들기로 소문난 사람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적절한 여백에 산뜻한 폰트를 사용해 문서를 읽기 쉽게 작성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폰트를 쓰는 데 남다른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흔히 폰트를 글꼴과 같은 개념으로 알고 있는데, 폰트는 글꼴에 특정한 스타일과 크기가 반영된 서식 문자로 좀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다시 말해 '명조'니, '고딕'이니 하는 것은 글꼴을 의미하는 것이고, '명조 이탤릭 볼드 10pt'라고 할 때 비로소 하나의 폰트가 되는 것이다.
문서에서 폰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서의 성격에 알맞은 폰트를 사용했느냐, 그리고 보는 이의 가독성을 고려한 폰트를 적용했느냐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폰트의 중요성은 비단 문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를 예로 들자면, 요즘은 영화를 기획할 때 영화의 성격에 맞추어 포스터에 사용할 폰트를 따로 제작하기도 한다. 최근 개봉된 <실미도> 포스터에 사용된 제목 폰트의 경우 남성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주도록 고안된 폰트다. 폰트 자체가 메시지를 담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것이다. 휴대폰의 경우도 최근에는 기본 폰트 외에 광수체, 윤고딕체 등 가독성과 디자인을 가미한 다양한 폰트를 탑재한 기종이 등장해 사용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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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를 잘 써야 문서가 산다
한 가지 폰트만 사용한 문서는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을 주며 너무 많은 폰트를 사용한 문서는 복잡하고 산만하게 보이기 쉽다. 따라서 읽기 좋은 깔끔한 문서를 만들려면 적당한 폰트를 골라 적재적소에 잘 사용해야 한다.
문서의 성격에 어울리는 폰트인가?
사적인 문서에 필기체를 사용하면 정겹고 다정한 느낌을 전할 수 있지만 공문서에 필기체를 사용하면 글의 권위를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어울리지 않는다. 궁서체의 경우도 시와 같은 문학 작품을 표현할 때에는 잘 어울리지만, 도표 안의 설명 글에 사용하면 어색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내용을 알아보기도 어렵다. 프로그래밍 소스의 경우도 타임체와 같이 글자의 폭이 가변적인 글꼴보다는 글자 폭이 일정하고 돌기가 복잡하지 않은 돋움체가 가독성이 높다.
글꼴을 바꾸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PC용 글꼴의 장점은 원래의 모습에 다양한 변형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기울기, 외곽선, 그림자, 밑줄, 확대, 장평, 자간과 같은 속성을 변경해 변화를 줄 수 있다. 같은 글꼴이어도 사용자가 어떤 속성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글꼴을 선택할 때에는 어떠한 속성을 부여할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본래 굵은 글꼴인 '굵은 돋움체'에 '진하게' 속성을 부여해 봐야 별다른 효과를 얻을 수 없으며 외곽선 장식은 굵은 폰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가는 글꼴에는 밑줄, 진하게, 외곽선 등의 속성이, 굵은 글꼴에는 그림자, 역상, 장평 조절 등이 어울린다. 원래 크기가 작은 글꼴이 있는가 하면 크기가 큰 글꼴도 있다는 것도 글꼴을 선택할 때 고려할 점이다.
가독성? 디자인? 어느 것을 취할까?
특정 글꼴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가독성, 디자인, 특이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 따라서 그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둘 것인지 결정하고 글꼴을 선택해야 한다. 특이하고 미려한 글꼴은 시선을 끄는 데 효과적이지만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고, 가독성이 우수한 글꼴은 대부분 독창적인 맛이 없어 시선을 끌기 어렵다. 따라서 글꼴을 고를 때에는 문서의 성격을 잘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
한글 글꼴,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
지금 신문, 책, 전단지 등등 글자가 새겨진 각종 사물을 둘러보자. 글꼴이 이렇게 많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글꼴은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글꼴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명조체와 고딕체는 1969년 고(故) 최정호 선생이 만들었다. 일제 시대에 글꼴의 세계에 눈을 뜬 그는 해방 이후 한글 글꼴 연구에 몰두하다가 동아출판사의 의뢰로 현행 활자 및 사진 식자체 40여 종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활자 글꼴의 기본이 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한글과 한자 글꼴은 대부분 최정호 선생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에는 활판에서 시작해 수동 사식기와 전산 사식기 등의 인쇄기를 거치면서 발전한 활자 원도를 참조해 글꼴을 만들었는데,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글꼴 하나를 만드는 데 3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이후 공병우 박사가 세벌식 자판에 알맞은 글꼴을 개발했으며, 컴퓨터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글꼴 분야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1987년 국내에 첫 선을 보인 매킨토시는 글꼴 분야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글꼴 개발에 컴퓨터를 이용하면 복제 등의 기능을 이용해 얼마든지 수정, 변형이 가능하고 보다 정교하고 빠르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어 예전의 수작업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폰트를 개발할 수 있다. 최근에는 폰트 제작 프로그램까지 등장해 글꼴 개발에 걸리는 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현재 국내에서 글꼴을 개발하는 업체는 10여 곳을 헤아린다.
한글 글꼴은 영문 글꼴에 비해 제작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롭다. 영문 글꼴은 A에서 Z까지 소문자와 대문자를 합해 총 52자와 숫자만 만들면 되지만, 한글 글꼴은 초성 19자, 중성(모음) 21자, 종성(받침) 27자를 합해 총 67자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이것도 조합형 글꼴인 경우에 해당하고 완성형 글꼴은 최소한 2,350자를 만들어야 비로소 하나의 글꼴을 탄생시킬 수 있다. 이외에도 심벌 1,200자와 기본 한자 4,888자가 디자인되어야 한다.
컴퓨터용으로 처음 개발된 글꼴은 대부분 비트맵 폰트였다. 비트맵 폰트는 구현이 쉽기는 하지만 원하는 크기의 비트맵을 모두 구비하지 않는 한 출력물의 질의 떨어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후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 타입1 폰트가 나오면서 윤곽선 폰트가 도입되었는데, 윤곽선 폰트는 제작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파일의 크기도 비트맵 폰트보다 크지만 글자의 크기를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고 모양 변형도 가능해 활발히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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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 포맷의 양대 산맥, 포스트스크립트 vs 트루타입
현재 주로 사용되는 폰트 포맷은 아그파의 인텔리폰트, URW의 IK,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 애플컴퓨터의 트루타입 등 4가지로, 이 중 포스트스크립트와 트루타입이 양대 산맥을 이루어왔다.
어도비에서 개발한 포스트스크립트는 타입1(Type1), 타입3(Type3), 타입4(Type4), 타입0(Type0) 등으로 나뉘며, 포스트스크립트를 지원하는 프린터는 거의 예외 없이 표준 프린터 포맷 언어(PDL : Page De-scription Language)로 타입1을 사용했다. 이에 따라 타입1은 포스트스크립트 자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포스트스크립트 포맷은 고해상도를 지원하는 프린터가 포스트스크립트를 지원하고 포스트스크립트 폰트가 스크린상에서 훌륭히 보인다는 글꼴 디자이너들의 확신에 힘입어 윤곽선 폰트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며 그래픽 디자인과 출판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1990년 애플컴퓨터가 만든 트루타입을 애플컴퓨터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자 어도비 역시 타입1을 공개하면서 이른바 폰트 전쟁이 시작되었다. 폰트 전쟁은 1990년대 말 마이크로소프트와 어도비가 공동으로 개발한 오픈타입이 등장하면서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오픈타입은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 파일을 트루타입 파일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변환해 주는 폰트 포맷으로, 포스트스크립트를 지원하는 프린터에서도 트루타입 폰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가 포스트스크립트 프린터와 함께 폰트의 고품격화를 가져왔다면 윈도와 매킨토시 운영체제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트루타입은 폰트의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트루타입의 탄생 덕분에 사용자들은 좀더 다양한 폰트를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폰트 제작사들은 더욱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