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중년'이란 나이

라즈니쉬 2010. 6. 22. 19:43

<'중년'에 대한 어느 교수의 글 중에서...>

1.  (중략...)
‘스타일’은 안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기운이다.
어떤 태도로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사람됨의 분위기로 묻어나는 법이다.
불혹(不惑)의 나이답게 부질없이 망설이거나 무엇에 홀리거나 하지 않는 마음의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스테디셀러 가운데 <사람은 [감정]부터 늙어간다>(<人は感情から老化する> 祥伝社新書)라는 책이 있다. 오랫동안 고령자들의 임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와다 히데키 (和田秀樹)라는 정신과 의사가 그 저자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노화는 지력이나 체력에 앞서 우선 감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능이나 지성은 늙어서도 그다지 쇠퇴하지 않으며 정상 보행 능력 등도 생각보다 오래 유지된다. 그러나 감정은 세월에 매우 취약하다. 그 영역의 노화는 쉽게 일어난다. 예를 들어 한번 화가 나면 좀처럼 통제가 되지 않는다거나 자발성이나 의욕이 감퇴하는 것이 감정의 노화 증세다. 뇌를 촬영해보면 그것을 금방 알 수 있는데,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보다도 감정을 관장하는 전두엽에서 먼저 위축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것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몸과 정신 모두가 가속도적으로 늙어버린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그가 제시하는 감정 연령의 테스트 목록 가운데 몇 가지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에 친구를 불러내 놀아본 적이 없다. 실패하면 예전보다 훨씬 오랫동안 위축되어 있다. 자기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성욕과 호기심이 현저하게 감퇴했다.‘이 나이에 뭘’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뭔가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녀석들이라고 종종 탄식한다. 지난 6개월 동안 단 한편의 영화도 보지 않았다. 지난 한 달동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여행을 스스로 계획하지 않고 언제나 남들에게 얹혀 다녔다. 이런 질문들에 그렇다고 답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마음이 늙었다고 보면 된다.

 저자의 오랜 임상 경험에 비춰볼 때 감정의 노화는 40대에 시작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선 생리적 차원에서 두 가지가 있다. 갱년기 장애와 맞물려 전두엽 기능이 쇠퇴하면서 감정의 통제 기능이 떨어지는 것, 그리고 세레토닌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줄어들면서 정신의 안정과 균형이 쉽게 흔들리는 것이다. 다른 한편 사회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장유유서의 문화 속에서 나이가 들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헤아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대접을 받는 교사 등의 직업군이 정서 지수(EQ)가 낮다고 한다. 나이에 따른 서열 매김이나 권위주의 문화라면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심하다. 따라서 저자의 진단과 경고는 우리에게 더욱 솔깃하게 와 닿는다.

 특정 직업만이 아니다.
의외로 많은 직장에서 권력관계가 예민하게 의식되면서 경직된 시스템과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타자를 오로지 경쟁이나 조종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세상에서 감정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직장인이 그러한 정황에 놓여 있는 듯하다.


2. (중략...) 

사람은 자신의 가슴 속을 들여다볼 때 비로소 시야가 트이게 된다.
바깥을 보면 꿈을 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깨어날 것이다.         - 칼 융 -


 상담심리학자 임경수 교수는 <인생의 봄과 가을 : 중년의 심리 이해와 분석>이라는 책에서 중년의 위기가 불가피한 과정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흔히 중년에서 발생하는 격동과 혼란은 심리적인 원인에서 비롯되기 보다는 개인들이 철저하게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중년의 심리 경향을 전혀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교육을 통해 초자아를 잘 형성하고 그것으로 적절하게 현실의 자아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중년의 위기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성인이 되는 과정에 대해 제대로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어느 교과 과정에서도 중년 이후의 삶을 어떻게 빚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운 바 없다. 

 중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논구한 바 있다. 일찍이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중년기를‘인생의 정오’이며, 40세 전후가 인생의 탈바꿈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전환기라고 했다. 이 시기가 되면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도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서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허무함에 시달린다고 한다. 미처 준비하지도 못했는데 갑작스럽게 닥치는 그 마음의 사태에 당황하게 된다. 말하자면 제2의 사춘기로서 다시 한 번 방황과 좌절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비를 잘 넘기고 생의 나침반을 제대로 설정하면서 성숙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꾀한다면 그 이후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3. (중략...)

전문가들의 조언은 대체로 비슷하다. 중년이 되면 다시금 성장과 도약을 위해 결단해야 한다는 것, 그동안 외부로만 향했던 시선과 지향을 깊은 내면으로 돌리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러한 성찰과 변화를 통해 자아는 한층 고결한 차원으로 통합되고 조화로운 인격으로 완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소설가 김형경은 <천개의 공감>이라는 책에서 그러한 메시지를 간결한 필치로 정리하고 있다.
그는 중년에 해야 할 중대한 과제로서 목표의 수정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생애 초기에 우리가 설정한 삶의 목표는 그 시기의 결핍감이 반영된 것들입니다. 그동안 삶을 추진시킨 에너지 역시 성적 욕망과 공격적 추동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은 사랑받기 위해, 결핍을 메우기 위해, 질투하고 시기하는 힘에 의해 추진되는 에너지였습니다. (...) 이제는 새롭게 형성된 정체성에 맞춰 삶의 목표를 수정해야 합니다. 하던 일을 바꾸라는 게 아닙니다. 그 일을 계속해서 전문성을 쌓으면서 내면의 목표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업을 해서 멋진 사옥을 짓는 게 목표였다면, 이제는 그 사업을 통해 어떻게 사회적인 책임을 완수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더 늦기 전에 변신을 시도하고 싶다.
익숙한 것들에만 머물던 시선을 조금 비끼어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우고 싶다.
40대까지 좋아하던 음식, 취미, 음악, 이성의 타입 등은 그 이후에 거의 그대로 이어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의 습관을 바꾸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기호나 취향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보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실존의 의미 충전 방식을 근원적으로 리모델링하지 않으면 허욕에 노예가 되어
추한 모습으로 왜소해질 것이다. 인생의 궤도에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고지식한 채로 현실에 순응하면서
조로(早老)해버릴 것이다.
반면에 낡은 껍질을 벗고 혁신과 도전을 감행한다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4. (중략...) 

문화의 시대다. 행복의 다양한 시나리오가 요구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비정하고 잔혹해지는 까닭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표가 몇몇 한정된 자원을 악착같이 거머쥐는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의 보람을 발견하고 재미를 창출하는 다양한 영역들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성공과 위신에 대한 압박에서 그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것은 이른바 양극화가 완화되는 한 가지 경로이기도 하다.
부자들이 돈에 대한 무한 집착에서 풀려나는 만큼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터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알량하고 비굴한 권력에 기대지 않고 자존(自尊)의 힘을 넉넉하게 세울 수 있는 남자들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격조는 높아진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자기의 삶을 즐겁게 꾸려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저마다 고유한 ‘이상향’을 찾아 나서고 거기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중년들.
젊은이들은 그 선배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미래상을 보다 자유롭게 그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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