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창호입니다. 제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내드립니다.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www.changhorg.net/
<김창호 참여정부 국정홍보처장 - 정운찬 총리에 대한 반론>
정운찬 총리, 참여정부와 정치게임 해놓고 핍박받았다니…
<대통령과 총리의 의도적 기억상실증과 기억투쟁이 필요한 이유>
정운찬 국무총리가 지난 11일, 서강대 특강에서 “서울대 총장 시절 노무현 정부로부터 핍박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서울대 폐지론’과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사건’을 사례로 꼽았다고 한다.
정 총리가 참여정부를 ‘핍박의 시절’로 기억하던 날, 이명박 대통령은 2년 전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사람 중 아무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며 “이런 큰 파동은 역사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2년 전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날, 정말 우연히도 정 총리는 그보다 조금 오래된 일을 엉뚱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우연히도 같은날, 대통령과 총리에게 ‘의도성 기억상실증’(혹은 ‘기억조작증’)이라는 희귀 질병이 동시에 발병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역사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역사는 치열한 기억투쟁의 장이다. 이 대통령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비교적 쉽고, 이 일을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정 총리와의 기억투쟁을 벌이고자 한다.
<다시 사실을 확인하고 가자>
먼저 황우석 박사 논문조작사건에 대해 정 총리는 “(서울대가) 조사위원회를 만들어서 중간발표도 하고 했는데 중간발표 하지 말라고 여러 압력도 받았다”며 “최종 발표 때도 정부에서 저에 대해 이러저런 의도적 비난 등을 많이 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참여정부는 당시 서울대 석좌교수였던 황우석 박사를 서울대가 직접 조사하는 것은 아무래도 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에 의문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한 적은 있지만, 결코 중간발표를 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은 적은 없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 황우석 박사 사건의 진실을 한 점 의혹없이 밝히기 위한 문제제기를 정 총리는 ‘외압’으로 기억하는 모양이다. 정총리가 노무현 정부의 정당한 문제제기를 ‘외압’이나 ‘핍박’으로 왜곡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결단코 진실이 아니며, 역사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다음으로 ‘서울대 폐지론’과 관련, 정 총리는 “대학입시제도와 관련해 노무현 정부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비롯해 여러 문제가 많은데 이건 모두 대학서열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정부에서) 그 정점에 있는 서울대학교를 해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여정부는 ‘서울대 폐지’라는 카드로 정 총리를 핍박한 적이 없다. 정 총리는 2004년 교육혁신위가 내놓은 ‘국립대 공동학위 수여제’ 구상을 말하는 모양인데, 이 방안은 말 그대로 학자들로 구성된 교육혁신위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만든 구상안일 뿐 실제 교육정책으로 구체화된 적이 없다.
이 구상안에 대해 당시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학벌주의는 타파해야 하지만 좋은 대학에 가려고 노력하는 분위기는 권장해야 한다”며 “국립대 공동학위 수여제는 시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음으로써 더 이상 논의되지 않았다.
국립대 공동학위 수여제는 일찌감치 폐기된 아이디어였다. 이 사실은 정 총리가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정 총리는 마치 참여정부가 서울대를 폐지하려는 음모라도 꾸민 듯이 말하는데, 이는 가물거리는 기억에 의한 착각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왜곡’이다.
<기억투쟁의 1라운드 : 정총리는 당시 참여정부와 정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정 총리는 자신을 참여정부에 의해 핍박받은 인물로 기억하지만, 추상같은 ‘춘추필법’의 역사는 오히려 정 총리를 참여정부와 각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진 ‘정치게임’을 했던 인물로 기록할 것이다.
춘추필법의 역사를 위해 필자는 정 총리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억투쟁을 벌이고자 한다. 기억투쟁 1라운드는 2004년, 교육부와 교육혁신위가 마련한 2008대입제도 개선안을 놓고 참여정부와 각을 세웠던 정 총리(당시 서울대 총장)의 위험한 정치게임에 관한 것이다. 당시 2008대입 개선안과 관련된 논의 전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2004년 8월 26일: 2008대입 개선안(시안) 발표. 이 안은 1점도 안되는 점수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대학입학전형에서 수능점수를 표시하지 않고, 9등급만 제공함으로써 ‘대학입학=점수’라는 공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안이었다. 또 대학입시에서 공교육 정상화 3원칙(이른바 ‘3불 정책’으로 불리는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 금지)의 내용만 유지하고 구체적인 전형방식은 대학에 맡김으로써 대학이 자율적으로 공교육 정상화를 고려해 전형을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안이었다.
- 2004년 10월 28일: 이 안은 2개월 동안 서울, 중부, 영남, 호남 등 권역별 공청회, 고교현장, 시도교육감, 대학총장 입학처장 협의회 등 각계의 의견수렴 등을 거쳐 2008대입제도 개선안으로 확정됐다.
- 2005년 6월: 하지만 서울대와 소위 명문 사립대들이 ‘2008학년도 대입전형계획’을 발표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들 대학의 전형계획은 사실상 ‘논술형 본고사의 부활’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처럼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줄세우기가 어려워진 일부 대학들이 본고사 부활이라는 편법을 동원했고, 그 선봉에 당시 서울대 총장이었던 정 총리가 있었다.
- 2005년 7월 8일자: 신문들의 제목을 살펴보면, “유감스러운 서울대와 대통령의 충돌”(경향신문), “정부-서울대 2008 입시안 전면전”(국민일보), “반박나선 서울대 ‘진압이라니…우리가 범죄자냐”(동아일보), “정부-서울대, 왜 사사건건 싸우나”(문화일보), “노무현과 정운찬의 한판 맞짱 ’서울대의 결투‘”(조선일보 인터넷판) 등이다.
서울대는 심층논술 강화, 3불정책 재고 등을 요구하며 참여정부의 교육정책과 대립각을 세웠고, 언론은 이를 앞다퉈 보도하면서 참여정부를 깍아내린데 몰두했다. 이 과정에서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맞짱뜨는 인물로 묘사되면서 차세대 정치리더로 부각되는 소득을 챙겼다.
‘전면전’, ‘진압’ 같은 군사용어로 전쟁을 생중계하는 듯한 선정적 보도 탓에 2008대입전형에서 서울대 논술시험이 과연 본고사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일은 묻혀버렸고, 이후 대입제도 개선논의는 정책의 실효성보다 정부를 비판하는 소재로 둔갑해버렸다. 이 논란에서 오직 당시 정운찬 서울대 총장만이 대통령과 맞짱뜬 차세대 정치리더라는 전리품을 챙길 수 있었다. <사진 참조>
정 총리와의 기억투쟁 2라운드는 정 총리와 필자만 공유하는 기억에 관한 것이다. 이를 공개하는 것은 어둠 속의 야사(野史)를 대낮의 정사(正史)로 끄집어냄으로써 정 총리가 참여정부에서 겪었다는 핍박이 왜 사실무근인지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다.
<기억투쟁의 2라운드: 그는 여러 차례 노무현 대통령 독대를 원했다>
기억투쟁 2라운드에서 정 총리가 한편으론 노무현 대통령과 맞짱을 뜨면서, 다른 한편으론 노무현 대통령을 독대하고 싶어했고 필자를 통해 그것을 시도했던 점을 되살려 내고자 한다.
2005년 5월, 일면식도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국정홍보처장으로 임명받은 필자는 우선 여론 주도층에게 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당시 입시제도와 관련해 이미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정 총리는 서울대 총장이라는 무게 만큼 현안에 대한 설명과 협조가 꼭 필요했다.
그래서 같은해 6월쯤, 인사동 남원집에서 정 총리와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를 가졌다(정확히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장소는 필자가 예약했다). 그 자리에는 철학과 선배 교수도 동석했는데, 정 총리는 “이 집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김 처장이 예약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왔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정 총리는 필자에게 “노무현 대통령을 뵙고, 서울대를 세계적 대학으로 육성하기 위한 방안을 보고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필자는 "지금 필자의 직책상 대통령께 직접 보고드릴 시간을 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서울대 학생들에게 특강 형식으로 초청강연을 마련하고 그때 자연스럽게 보고 드리는 것이 어떨까"라며 아이디어를 냈다.
정 총리가 "여러 차례 선을 대 대통령을 뵈려 했지만, 386들이 차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고, 필자는 "제가 서울대 박사이고, 서울대에서 강의도 해서 애정이 있으니 노력해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2차로 캐피탈호텔 2층 주점으로 옮겨 또 폭탄주를 마셨다(이후 필자는 정 총리가 경제학과 제자인 어느 기자에게 “‘(김 처장이) 자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대통령을 만날 수 없다’고 허세를 부렸다"며 "웃기는 친구"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필자는 정 총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울대 초청강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정리된 문건을 전달했고, 또 대통령께 직접 건의할 기회도 물색했다. 당시 필자의 판단으로 대통령의 고민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토론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곧 정 총리는 대학입시안을 놓고 정부를 공격하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게 되었고, 필자로서는 이런 상황이 매우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김진표 교육부총리 등이 여러 경로를 통해 언론보도에 대한 정 총리의 진심을 확인했다. 그때마다 정 총리 측으로부터 “왜곡보도다”,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 등의 대답이 돌아왔다. 심지어 “언론의 행태를 잘 알지 않느냐. 나(정 총리)도 당하고 있다”는 하소연이 전해지기도 했다.
<'비겁하다'는 말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
같은해 7월쯤으로 기억한다. 필자는 기자들과의 저녁자리에서 “서울대 비겁하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고, 이것이 “홍보처장 막말”이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질타를 받았다. 당시 필자는 ‘서울대’를 거론했지만, 진짜 타켓은 당시 서울대 총장이었던 ‘정 총리’였다.
그가 비겁한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우선 심층논술 강화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본고사를 부활시키려는 정운찬 총장의 편법적 인식을 지적하고자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필자에게 대통령에게 보고할 기회를 달라고 하면서 동시에 언론을 활용해 노무현 대통령과 대결구도를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이중플레이에 대한 지적이었다.
지금도 필자는 “비겁하다”라는 말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 언론에 편승해 참여정부와 대결을 즐겼던 정 총리가 이제 와서 자신을 핍박받은 인물처럼 묘사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참여정부 시절 그의 행태는 떳떳하지 못한 것이었고, 당시를 떠올리는 지금의 기억법은 신사답지 못하다.
이제 참여정부는 죽은 권력일 뿐이다. 왜 정 총리가 ‘핍박’이라는 거짓 기억을 통해 이미 죽은 권력을 다시 욕보이려 하는지 알 수 없다. 시퍼렇게 살아있는 권력의 총리직도 모자라 다시 한번 ‘참여정부 때리기’라는 왕년의 수법을 재활용하는 거라면, 그건 정 총리의 자유다.
하지만 거짓 기억으로 사실을 바꾸고,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된다. 필자가 정 총리와 기억투쟁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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