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花樣年華)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한 때, 혹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챠우가 리첸에게...
리첸...
늘 내게 뒷모습만을 보이던 당신...
1966년에 나는 앙코르와트에 갔었어.
기자의 신분으로 갔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 하나를
고대의 사원 속에 영원히 봉인하는 의식을 하러 갔던 것이오.
당신은 아는지...
옛날엔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비밀이 있으면
산으로 가서 한 나무에 구멍을 내고
거기 비밀을 속삭인 다음 진흙으로 봉한다고 했소.
그러면 비밀은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 남는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소.
앙코르와트 사원을 휘감은 나무 한그루에
나는 조용히 내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속삭였소.
그리고 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마음으로 그 곳을 걸어 나왔소.
내가 그 곳에 묻은 비밀...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
당신만이 알고 있을 그 비밀...
리첸...
1962년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소.
먼지 낀 창틀을 통해 과거를 볼 수는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이곤 하오.
그러나 어느 한 장면 장면들은 너무나 선명해서
여전히 당신은 내 눈앞에서 눈부신 차파오을 입고
가녀린 몸매로 나를 비켜가곤 하오.
그 엇갈리는 순간들이 나를 얼마나 많이 멈춰 세웠는지...당신을 알까?
나는 늘 당신의 부풀린 머리와...단정한 옆모습과...
안타까운 뒷모습에 눈길을 주며 시간을 보냈소.
아픔도 늘 삭히기만 하는 나였지만
당신을 보고 돌아서는 순간만큼은
수천 개의 작은 화살들이 나를 찌르는 듯 마음이 아파오곤 했소.
그래서 나는 당신과 나를 연결할 무언가를 찾아야 했소.
우리를 연결시켜주었던 무협소설이 해답이라고 생각했소.
당신이 내 곁에서 지켜보고 있을 때...
나는 가장 글을 잘 쓸 수 있었소.
내가 가진 재능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하나...
당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신과 연결 되는 오직 하나의 연결 통로라는 것 때문 이였소.
리첸...
우리는 우리를 공공연히 버린 배우자들과 달라야한다고 생각했소.
결과적으로는 다를 것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소.
그것이 나를 한없이 소심하게 했지만
나는 단하나 당신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했소.
더 이상 당신을 위해서 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내가 선택한 것은 당신을 떠나는 것이었소.
소심한 선택이었지만 내 모든 것을 던진 선택이기도 했소.
수 백 번... 수 천 번...
전화기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나는 당신에게 속으로 말했소.
싱가폴로 가는 티켓이 한 장 더 있다면...나와함께 가겠소? 라고...
그러나 그 말은 결코 해서는 안돼는 말이었기에 내 마음 안에 잠들어 있소.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라디오에서 당신의 남편이 신청한 음악을 들었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뜻한다는 화양연화를...
당신을 위해 신청한다는 남편의 신청 곡을...
당신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으면서
내 마음은 괴로움 속에서도 가야할 방향을 찾은 것 같았으니까...
그래 당신과 나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시절을 함께 했다오.
그러므로 그 순간을 훼손하지 않는 것도 나의 의무라고...
그리고 나는 일어서서 나의 집을 나섰소.
방의 모든 불을 끄면서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도 조용히 껐소.
스위치를 내려 불을 끄듯 내 마음 안에 모든 것을 조용히 내렸소.
리첸...
내가 싱가폴에 있을 때 어느 날 당신은 내게 전화를 걸었소.
아무 말도 없는 전화기 넘어 당신의 마음...
그 마음의 울먹임...
내게로 전해오는 그리움... 아픔...나는 다 전해 받았소.
앙코르와트로 가기 전에 리첸...
나는 우리가 이웃하며 함께 보냈던 그곳으로 갔소.
모든 것은 다 변해있더군.
옆집에 아이하나를 데리고 사는 부인이 있다고 했소.
나는 그 사람이 당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소.
그러나 확인하지 않은 것 또한 나의 예의리라 생각했소.
뚜벅뚜벅 발자국소리를 남기며 나의 한 시절을 지나쳤소.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당신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아마 변한 것은 없겠지.
추억은 추억이니까...
우리들의 화양연화는 거기까지였으니까...
사랑하는 리첸...
이제 당신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거느릴 수 있소.
앙코르와트의 나무 구멍 속에 파묻은 것은
한 시절 나의 소심하고 안타까운 마음 이였고
당신은 점점 더 자라서 내 마음 안에 하나의 나무가 되었소.
내안에서 당신은 늘 눈부신 차파오를 입고
가녀린 어깨를 조금 비틀어 내 곁을 엇갈려 지나가고 있지만
나는 당신의 안타까운 뒷모습을 언제까지나 내 마음 안에 붙들어놓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시절을 견딜 것이오.
당신을 그렇게 영원히 사랑할 것이요.
그 방식이 당신을 쓸쓸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조금씩 영원히 사랑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라오.
당신의 쓸쓸하고 단정한 그 모습 안에도
환한 웃음이 깃들기를...
Yumeji's Theme (화양연화 OST 중)
/ Shigeru Uchiyama ........... 시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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