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이 잘못인가, 정부가 잘못인가...참여정부 언론정책에 대한 단상
이른바 공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기자는 정말 무서운 존재다(나는 직장생활의 처음부터 지금껏 기자인줄로만 알아 왔다가, 나 역시 한 사람의 공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건도 있었다).
왜 기자가 무서운 존재인가. 그건 기자가 갖고 있는 취사선택권 때문이다.
취재원인 공인이 기자에게 많은 얘기를 한다. 기자는 맞장구를 치기도 하면서 듣는다. 그러나 그 많은 얘기를 모두 기사화할 수는 없다. 전통적인 종이언론은 지면의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취사선택한다. 기자의 힘은 바로 이 부분에서 발휘된다.
맘에 안 드는 취재원일 경우 부분적으로 말을 연결시켜 얼마든지 왜곡을 할 수 있다. 뿐인가. "...라고 말해 ...임을 시사했다"는 식의 자의적 해석을 진실인양 덧붙이는 비장의 기술까지 동원되면, 취재원이 말한 뜻과는 전혀 엉뚱한 내용으로 둔갑한 기사가 1면을 장식할 수 있다. 우리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매일같이 그러한 사례들을 무수히 본다.
이른바 집단으로서의 공조직에게는 역시 집단으로서의 언론이야말로 무섭기 짝이 없는 존재다. 기자 차원에서 벌어지는 왜곡이야 지엽말단적인 것일 수도 있으나 언론 차원에서 벌어지는 왜곡은 지엽말단이 아니라 본말을 전도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말한 내용의 적합성 여부에는 관심이 없고 어법이나 말투 등에 방점을 쳐왔던 참여정부 초창기 언론집단의 대통령에 대한 집단 이지메가 극명한 사례이기도 하다. 거기에 한번 걸리면 멀쩡한 사람이 무능한 사람으로 돌변한다. 멀쩡한 조직이 엉망진창인 조직으로 돌변한다. 올바른 정책이 엉터리 정책으로 둔갑한다.
사회는 복잡하기 때문에 언론의 조작술이 발휘할 수 있는 범위도 넓다. 누구도 여기에서 피해갈 수가 없다. 우리 사회처럼 좁고 끈끈하게 얽혀 있는 작은 테두리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집단으로서의 언론이 발휘하는 조작술은, 역설적인 얘기지만, 그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실은 방비가 가능하다. 조중동의 주술이 잘 먹혀들어가는 듯하다가 결정적인 때에는 말빨이 먹히지 않았던 과거 사례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정부 정책은 진선진미하지 않다. 사회의 각종 계층이 갖고 있는 이해의 최대공약수이면 사실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이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여러 반론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최대공약수에 근접하는 것이라면, 건설업자들의 광고물량공세에 굴복한 언론의 집단적 발작이 어떻든 간에 결국에는 국민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기자 개개인이 만일 이 정부에 대해 감성적 반감, 논리가 명확하지 않은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이라면 그건 오히려 문제일 수 있다. 어제(11월22일) 무슨 일이 있어 어떤 곳을 찾아갔다. 기다리기 지루해 책상위에 펼쳐진 신문을 봤다. 한국경제신문이었는데, 1면 톱기사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의 내년도 세계경제의 성장률에 관한 전망을 요약 발췌한 것이었다.
기사는 대략 내년도 세계경제성장률이 4.7%가 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그 기사의 말미에 있는 단 한 줄이다. 그 기자는 "한국은 아시아에서 최하위권인 3.9%정도 성장할 것으로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고 썼다(기억을 더듬은 것이라 표현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 기사를 읽는 순간 이 기자가 이 정부에 커다란 반감을 갖고 있던가, 아니면 그 기사를 최종검열한 담당부장이나 편집국장이 이 정부에 커다란 반감을 갖고 있을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왜 그런가. "한국은 아시아에서 최하위권인"이란 표현은 정말 기사의 내용을 거꾸로 보도하는 악의적 왜곡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평균성장률이 4.7%로 전망되는데 한국 경제가 3.9%로 전망된다면 이것은 매우 높은 성장률이라고 봐야 한다. 경제상식의 ABC만 알고 있는 내가 봐도 그렇다. 왜냐. 한국경제는 이미 세계국가중 상위권에 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략 상위권에 속한 국가의 성장률은 2%대를 넘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상위권 국가치고는 굉장한 고성장이 예고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아시아에서는 최하위권일 수도 있다. 아시아권에서 세계경제의 상위권에 속한 국가는 많지 않다. 일본 한국 대만 정도다. 싱가포르도 있으나 도시국가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세 국가는 성장률 면에서 아시아권에서는 언제나 최하위권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개발도상국가와 성장률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아니나 다를까. 4면에 있는 관련기사에 있는 표를 보니 나의 분석 그대로였다. 아시아에서 중국의 성장률이 9%대, 인도의 성장률이 7%대, 싱가포르가 4%대였다. 일본은 2.1%, 미국은 2.2%인가 그랬다. 한국의 3.9%는 이에 비하면 거의 2배에 가깝다. 따라서 한국의 성장률 전망은 아시아에서 최하위권으로 표현될 성질의 것이 아님이 너무나 명백하다. 굳이 한국 관련 내용을 넣는다면, "아시아에서 최하위권인"이란 표현은 빠져야 했다.
왜 그랬을까. 원천적으로 그 기사를 쓴 기자나 담당부장, 혹은 편집국장이 이 정부에 대해 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일본이나 한국은 분명 내년도 경제성장률 면에서 아시아에선 최하위권이다. 이미 두 국가는 탈아시아적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시아에서 최하위권이라고 표현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내용적으론 왜곡이다. 한마디로 한국경제신문은 이 기사의 말미에 붙은 한 문장을 통해 현재 나라 경제를 운영하는 주체인 참여정부에게 "엿 먹어라(fuck You)"라고 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이 몇백 조씩 사내유보를 쌓아놓고도 투자를 하지 않는 한국 재벌들 과 유독 가까워 그런 것일까. 물론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유형의 "엿 먹이기"기사는 무수하다. 기자라는 집단이 이 정부에 엄청난 유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물론 아닌 기자도 많다. 하지만 대세가 그렇게 보인다는 얘기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권력인 조중동에 굴하지 않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청와대가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것은 그렇게 탐탁해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나 정부의 언론홍보파트는 언론정책적인 조율에 최선을 다하는 곳이지 개별언론과 대결하는 곳이 아니다. 가령, 정부 이미지홍보성 광고의 경우 온 지면에서 정부를 씹고 또 씹어대는 조중동에 광고하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그래서 이미지홍보성 광고는 조중동에 단 한건도 주지 않기로 한다든지(물론 공무원을 뽑는다든지 하는 등의 광고는 많이 팔리는 조중동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는 것이 그 예다. 개별언론과의 대결은 정치권에 맡겨야 했었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한 시비를 걸자는 것이 이 글의 본뜻은 아니다. 매우 많은 기자들이 소속사의 입장에 발을 맞춰, 혹은 다소 무관하게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면, 정부의 대언론홍보정책은 그렇게 성공한 것이 아니란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뭐 그렇다고 과거 사례로 볼 때 이런 흐름이 다음 대통령선거에 그리 큰 영향을 줄 것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DJ정부 말기 언론의 집중공세로 정권은 거의 식물인간 상태까지 갔지만, 그들 언론이 지지했던 이회창은 낙마했다. 언론의 무차별 이지메가 그나마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한다는 사실은 다행이란 생각이다.
(서프라이즈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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