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풍경

처음 본 느티나무

라즈니쉬 2005. 10. 14. 10:06
점심식사후 근린공원에 산책을 갔었습니다.

가을 햇볕이 따가워 잠시 벤치에 앉아있었죠.
주위풍경을 잠시 보다가 제 머리위를 90도로 올려보았더니
햇살을 받아 투명한 나뭇잎 사이로 맑은 하늘이 보입니다.
녹색 이파리와 파란 하늘의 조화로움... 온 몸을 감싸는 듯한 평화로움...

전방 10미터앞의 나무에 유난히 눈길이 갔습니다. 
은행나무처럼 노~오란 이파리를 달고 있는 나무.
무슨 나무인지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죠.
구청 관리직원이 나무이름을 표시한 하얀 플라스틱이 달려 있더군요.
'느티나무' - 나무의 간단한 특징을 적어놓은 서너줄 문장 말미에는
"나무중에서 왕이라 할 만하다" 라고 적혀있더군요. 

순간 참 부끄러웠습니다.
시나 소설에서 그렇게나 자주 등장하고 읽어왔던 문장 "동구앞 느티나무..."
저는 오늘 느티나무의 생김새를 처음 보았답니다.

제가 본 작은 느티나무 주위에는 아주 커다란 느티나무 몇 그루가 더 있었어요.
느티나무의 가지가 뻗어나가서 하늘을 가리고 있는 광경...
느티나무는 참으로 넉넉하고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명 그런 느낌의 이유로,
그렇게나 소설이나 시에 자주 등장했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주위의 나무를 유심히 둘러보니,
조그맣게 나무이름을 적어놓은 하얀 플라스틱 조각들이
나무가지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는듯이 메달려 있었어요.

대추나무, 산수유나무, 중국단풍, 월계수나무,
단풍나무, 잣나무, 목련, 감나무...

또 한가지... 제가 평소 소나무라고 알고 지나쳤던 나무도 잣나무더군요.
저는 지금껏 이파리가 소나무잎처럼 생긴 건 모두 소나무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소나무 이파리와 비슷하게 생긴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초등학교때 교실 창가에 나란히 심어놓았던 히말라야가시 나무만
소나무와 비슷해도 소나무가 아니란 걸 안답니다. 우습죠? ^^

일주일에 서너번은 산책오는 근린공원인데,
전 지금껏 이 나무들을 왜 보지 못했을까요?...
공원을 산책하며 무슨 복잡한 생각을 그렇게도 했을까요?
 
오늘 제 마음은 무척 평화로웠나봐요.
나무들이 제 눈속으로 걸어들어온 걸 보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본다는 말이 실감난 하루였어요.
눈을 고정시키고 어떤 생각에 몰입하고 있으면,
눈앞에 장만옥이 걸어가도 알아차리지 못하죠.
지금껏 제 몸은 평화로운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어도,
제 마음은 소란한 시장바닥에서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메고 있었던겁니다.

가깝고도 먼 어느 날!
만에 하나 그런 날이 온다면...
느티나무 아래에서 두 손으로 두꺼운 식물도감을 펼쳐들고,
느티나무가 설명된 페이지를 찾아 어린 딸애에게 읽히고 싶습니다.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어느 날 갑자기 발견한 경이로움...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저는 행복했답니다.
이 가을에, 님들도 주변을 둘러보셔서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시고 
그로 인해 작은 행복감을 맛보실 수 있기를 기원할께요.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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