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부(酌婦)의 남자
1.
오늘 그 놈이 가게에 온다고 했나보지
목욕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서는 걸 보니
한달에 두어번 온다는 산삼장수라는 그 놈
그 놈 가슴에 장미향 피부를 대접하고 싶어서.
그래 그 놈 안지가 올해로 삼년째라
얼마나 챙겨서 얼마나 살림이 나아졌느냐
그 놈이 네게 미끼던져놓고 데리고 노는 것이
우둔한 내 눈에만 보이는 거냐 아니면 내 질투냐
20년차이라서 아빠라 부른다던 그 놈 곁에서
액세서리로 보내준 3년은 니 인생의 황금기였다
목돈받기 전에는 지난 세월이 아까워 포기못한다구
돈에 목메달다가 행여 니 목이나 먼저 메달지마라.
2.
새벽 4시면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하이 힐 소리
아침 10시면 화장실에 가서 물을 내리고
정오를 넘겨 2시나 되어서야 겨우 지친 몸을 일으키면
난 너에게 지난 밤의 내 눈물로 만든 점심을 바친다
식사를 마치고 예능프로 재방송을 보며 키득대다가
샤워실로 가서 어젯밤의 술을 물로 씻어내고
머리를 말리는 동안 세상의 모든 아빠 오빠의 전화를 받아주고
오후 7시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배시시 집을 나서는 너
오늘도 공허하지만 시끄러운 웃음을 흘리고
누군가의 가슴을 파고들며 자켓안의 지갑을 탐하며
인정사정없이 파고드는 이 세상 수컷들의 손길을
적당히 방어하며 때론 밀어내는 척 유혹하겠지
3.
삶이란 건 너에게 무엇이냐
돈이란 건 너에게 무엇이냐
그 놈들은 네게 무엇이며, 사랑이란 너에게 무엇이냐
이 세상에서 너에게 가치있는 것은 무엇이냐
어떤 잡놈들의 얘기를 해도 들어주는 내가 편하지?
무슨 고집을 피워도 화내다가 결국 져주는 내가 이쁘지?
말없이 먹기엔 미안하지만 내 눈물로 만들어주는 밥이 맛있지?
나란 놈이 네 인생에 손해는 절대 아니란 계산은 있지?
이제 너의 몸을 더 이상 가까이하지 않으마
순진한 표정 매혹적 눈웃음으로 내 결심을 흔들지 마라
난 너만의 남자이지만 넌 나만의 여자가 되어줄 수 없다면
내 눈물의 밤을 이쯤에서 멈추고 아무래도 떠나야겠다.
4.
진짜 못돼먹었지만 참 많이 이쁜 년아!
술 많이 마시지말고 제발 몸만 건강하게 살아라.
주저앉자니 눈물의 밤이요 떠나자니 걱정의 밤이지만
서로가 떨어져봐야 서로에 대한 가치를 알게되나니
니가 웃으면 내가 못내 행복했고
니가 울면 내 가슴이 찢어지던 날들
너란 존재에 24시간이 맞춰져있던 나의 날들
세상의 아빠 오빠들에게만 맞춰져있던 너의 날들
한 때 그런 남자가 있었다고 훗날 한번쯤 추억해주렴
바보같은 한 남자가 있었는데 매일 점심을 차려줬다고
내 생활의 비서마냥 이것저것 참 많이 챙겨줬다고
그러다가 어느 날 '마음이 힘들다'며 떠나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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