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3. 4. 25일...
오늘은 쉬는 날이다. 눈이 많이와서 작업을 못한다고 한다.
새벽에 창밖을 보았더니, 내리는 눈에 가려져 20미터앞의
사무실 건물동도 안보이더구나.
어젯밤 잠을 설친관계로 다시 잠시 눈을 붙였다 이제서야 일어났다.
2층에서 창밖을 보며 또 네 생각을 한다.
네가 사는 도시에도 지금 눈이 내릴까?...
어젯밤 11시, 불꺼진 사무실 전화기앞에서 한 시간을 앉아 망설였지만,
결국 네게 전화를 걸지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잘 있니?"라고 묻는 말... 그 한마디외엔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
전화를 들고 이어지는 짧은 수초간의 침묵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2. 너 있는 곳까지는 저 설산 몇개를 넘어야 할까? 난 이곳 지리도 잘 모르며, 네가 있는 도시까지의 거리도 잘 모른다. 네가 살고있는 이 나라에 나도 잠시나마 생활해보고 싶었고, 네가 생활하며 귓전에 듣는 이방인들의 말소리를 나도 들어보고 싶었고, 네가 맞는 눈과 비를 나도 맞아보고 싶었고, 네가 매일 먹는 음식들을 나도 맛보고 싶었다. 저번 주 너와 나의 통화... "너 보려고 왔단다."... "그런 말 좀 하지마세요..."
3.
그래!... 어쩌면 난 다른 이유로 온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 전, 이 나라의 여러 소설에서 읽었던 아련한 기억을 잊을수 없어서.
주인이 수십년을 정성들여 가꾼 어느 작은 온천여관에 들어,
다다미방 탁자앞에 유카타 차림으로 앉아서 데운 청주를 음미하며,
불빛 은은한 밤의 정원석 돌길을 거닐어 보고 싶었는지도.
그리고 난, 이 나라의 하루끼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가와바다 야스나리로부터 에쿠니 가오리까지...
지금은 줄거리도 잘 생각나지 않는 몇 권의 책들을 읽으면서,
언젠가 한번은 이 나라의 낯선 여관에 들어 술을 마셔보고 싶었다.
네 마음이 불편하다면... 내가 이 나라에 온 이유는 네가 아니었다며...
아주 하찮은 이런저런 이유를 10개 이상도 말해줄 수가 있다.
내 마음의 진실보다 앞서는, 네 마음의 평온을 위해서라면.
4.
너와 나에게 이국땅, 여기 하늘 아래에서는,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잿빛구름이 하늘을 덮어도...
눈부시게 푸르른 날에도... 떠나오기 전보다 네 생각이 더 난다.
나, 아무래도 이 땅에 잘못왔나봐. 돌아갈거야. 가기전에 너 한번만 보구...
같은 나라 하늘아래 같이 있는 게, 네게 그토록 부담이 될줄은 ...
난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네게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차를 타고 대륙의 먼지날리는 비포장도로를 헤메다니던 그 시절부터...
5.
우에다역에서 열차를 타고가서 또 중간에서 갈아타고...
도꾜까지 1시간 반...
그리고 도꾜에서 다시 신칸센으로 3시간이라 했던가?...
쉬는 날이면 너를 생각하며 와 보곤 했던, 네게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는 우에다역.
그 역을... 나는 이제서야 드디어 출발하려 한다.
다녀보지 못한 이국의 낯선 길을 향해 긴장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환승역사에 내릴때마다, 안내표지판 앞에서 잠깐씩 행로를 연구하고,
역무원에게 더듬거리며 물어보고, 티켓팅 하기를 몇 번...
나는 지금... 초라하고 피로에 지친, 짐가방 두개든 한국인일뿐.
이 남루한 한 남자가... 지금... 너에게로 가고있다.
* 내안에 우는 눈물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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